3화: 마법의 보리차
은지는 아침마다 병실에 보리차 향을 퍼뜨리는 사람이었다.
스테인리스 물통에 직접 끓인 보리차를 담아와, 각자의 머그잔에 조심스럽게 따라주
곤 했다.
"이거 마시고 오늘도 힘내요. 몸은 아파도 입은 덜 심심해야죠~"
그녀가 웃으며 건넨 보리차 한 잔은 실제로 무언가를 치료하진 않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은지는 감기로 입원했지만, 정작 가장 멀쩡한 사람 같았다.
하루 두 번은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발을 닦고, 샤워를 했다.
자기 물건들을 반듯하게 정리했다.
병실이라는 불편한 공간 안에서 스스로 편안함을 만들어내는 법을 아는 사람.
그녀는 늘 작은 무언가를 나눴다.
오늘은 비누, 내일은 샴푸 샘플, 다음 날은 화장품 회사에서 나온 미니 사이즈 앰플
한 팩.
"이건 수분용이고, 이건 미백. 건조한 날엔 이게 진짜 좋아요."
그녀는 선전하는 말투가 아니라, 나눠주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처럼 말했다.
은지는 향기 나는 비누와 화장품 샘플도 나눠줬다.
비닐 포장을 벗기면 보랏빛 라벤더 비누에서 은은한 향이 피어났고,
그 비누 하나에 병실의 공기가 조금 맑아졌다.
"언니, 이거 써봐요. 이 냄새, 진짜 사람 사는 냄새야."
은지는 냄새를 나누고, 온기를 나누고, 간식까지 나눴다.
며칠에 한 번씩은 간호사실로 치킨이나 피자를 시켰고,
"혼자 먹긴 많잖아요~" 하며 자연스럽게 병실 사람들에게 권했다.
간식을 받을 때면 모두 고마워했고,
"잘 먹을게요" 하면 은지의 웃음엔 괜찮다는 말이 항상 묻어 있었다.
지우가 침대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던 날,
은지는 슬쩍 비누 한 개와 귤 하나를 건넸다.
"너도 여자야. 이 향 좋아할 거야."
지우는 말 없이 받았고,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샤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은지는 냄새보다 먼저 사람을 씻어주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은지는 병실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간호사가 뭔가 도와달라 하면 제일 먼저 일어났고,
어르신들이 수액대 밀고 화장실 가는 길에 물컵 하나 들고 따라나서곤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밝았던 그녀도 지칠 때가 있었다.
복순에게 비누를 권하고, 씻으라고 권했지만
복순은 "됐어요"라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은지는 몇 번 반복하다 말았다.
"어른이니까. 스스로 해야지, 뭐."
그 말은 담담했지만 자꾸 벽에 부딪히는 사람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하루는 수세미를 직접 떠서 모두에게 하나씩 돌렸다.
알록달록한 실로 짜인 예쁜 수세미였다.
모두가 고맙다며 조심스레 받았지만, 미선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줘요~ 커피도 줬잖아~"
은지는 웃으며 "미선 언니는 커피만 열두 잔은 얻어갔죠~"
라고 했지만, 그 웃음 뒤엔 뭔가 서운한 기색이 살짝 스쳤다.
밤, 나는 은지와 함께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무심코 "은지 씨는 진짜 건강해 보여요"라고 말하자
은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사실… 나도 환자예요. 그냥 겉으로 멀쩡해 보여서 그렇지.
여러 사람들을 도우다 보니… 나도 아프고 지치고 힘드니까
남 도우면서 버티는 거예요."
그녀는 벽 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가끔은… 그냥 내가 사라진 것 같아요.
모두가 뭔가를 기대하는데, 나는 내 기대는 내려놓은 지 오래라…"
다음 날, 은지는 여전히 물통을 들고 보리차를 따랐고
커피를 나눠주며 말했다.
"이거 마시고 오늘도 버텨보자고요~ 우리가 다, 잘 버티고 있잖아요?"
그 말은 위로였고, 자기 최면이었고,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작가의 메모
"도움을 주는 손이 때론 가장 외롭다.
은지는 누구보다 밝았지만,
그 빛은 스스로를 태우며 나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