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등감

by 그레이스 조


상담을 받는 도중 내 안의 열등감을 발견했다. 열등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도무지 알기 어려웠고 이러한 답답함을 종종 느끼며 꽤 오랫동안 살아왔다. 어떨 때는 내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헷갈려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 엄마의 비교하는 말과 '바보야, 그것도 못하게'라는 말이 나를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나의 뇌와 마음은 점점 쪼그라짐을 느끼며 동시에 누군가 아래로 나를 중력의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아주 오랜만에 생생히 떠오른다. 분명 아픈 기억임과 동시에 이렇게 나의 열등감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용기가 생겼음을 말해주고 많이 건강해졌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열등감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낀다. 열등감의 위험과 무서움에 대해 성경을 배울 때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착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조금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고 머리로만 어림짐작만을 했었을 뿐인데 그 당시 아는척하며 말했던 부끄러운 나 자신이 떠오른다.


내 안의 열등감으로 인해 부단히 똑똑해 보이려는 척을 하기 위해서 유튜브와 책을 참 많이 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무언가 있어 보이고 싶고 지적으로 보이게 함으로 하나의 보호 방편으로 삼았던 듯하다. 바보같이 보이고 싶지 않은 강박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주로 단점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단점을 보완하려 애쓰고 감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나의 장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며 살아온 나를 발견한다. 기독교인이었지만 여전히 성취지향적인 모습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난 기독교인 흉내를 내오며 살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전반적으로 다 그러진 않았겠지만 아는 척을 하다 보니 흉내를 본의 아니게 내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신학교에서 배운 토대로 이전보다는 아주 약간은 더 명확히 알게 된 듯하다. 그리고 어쩌면 내 안의 열등감은 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타인의 단점은 자동적으로 지극히도 잘 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식 간에 나도 모르게 최소한 속으로 비난 또는 비판을 일삼으며 판단하며 나의 시간을 쏟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


여태껏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잘못 보내고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물론 책이나 강의에서 수도 없이 긍정에 관한 것들을 보고 들으며 낙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볼 수 있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현저히 적었던 듯하다. 그러다가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감사'라는 단어 하나를 붙들며 겨우 버틸 때도 있다가도 때론 넉넉히 즐거움을 맛보며 보내는 나날들이 교차적으로 주어졌었다. 이젠 내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용기 내어 사는 연습 중이다. 세상이 이렇게나 달리 보일 수가 있구나 하며 감탄하며 보내는 날이 부쩍 많아진 요즘이다. 내가 그동안 참 유익하지 않은 것에 많은 신경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러 얼굴들과 행동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나를 사로잡고 때론 옥죄어 왔던 것들을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되지 않았는데 여러 아주 유익한 수업, 상담, 기도를 통해 좋아지고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족치료와 가족 상담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화를 버럭버럭 내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교수님의 말에 자연스레 아빠가 떠올랐다. 경상도 남자들은 정말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과묵하고 대화를 마치 화가 난 듯하게 하시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난 그저 경상도 남자들의 특징 중 하나라 치부해 왔다.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할 기회가 없었던 아빠를 떠올려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헝그리 정신의 시대를 살아온 아빠를 이제는 한층 더 이해하고 되었고 부모님이 아닌 같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보게 된다. 다 함께 나누는 시간 가운데 교수님이 시키신 학생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누어 달라 하셨다. 지난 수업에서는 다른 학생이 헷갈려하는 것을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도와주라고 하셨는데 그땐 단답형이었기에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나도 아직 내용에 대한 정리가 다 되어 있지 않았고, 게다가 역기능 가정에 대한 내용으로 나의 가족이 투영되어 약간의 혼란인 상태 가운데 있었지만 마치 난 준비된 거 마냥 반응을 보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또한 고쳐야 한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며 준비가 안된 것엔 안되었다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다. 기다렸다는 거 마냥 내 안의 방어기제는 바로 발동을 했고, 그 아주 짧은 몇 초 동안 두뇌 회로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내 머릿속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과 나누지 않을 것을 구분했고 나의 마음 한편은 알 수 없는 묵직한 불편함이 올라왔다. 사람이 이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오갈 수 있다는 것과 치열함에 놀랐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아빠와 관련된 내용을 쏙 빼고는 나에게 다음으로 와 닿았던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부끄럽게 여겨지는 가족의 모습을 수업에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였다. 쉽지 많은 않은 솔직해지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약간은 부끄러운 가족의 이야기였어도 인지하여 어느 정도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더 이상 창피하게 느껴지지 않는 내용은 나름 용기 내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마치 연습을 해온 듯한 느낌이다. 그 외에 잘 인지되지 않은 것은 오늘처럼 방어기제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척을 하며 나의 생각을 여김 없이 나누는 것처럼 말한다. '희생양'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유용한 기술의 기록하기를 미래의 가정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은 눈치셨다. 나의 생각을 말한 한 후, 교수님은 본인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하시며 '우리가 우리 부모 세대를 여러 학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자 배운다'라고 말씀하셨다.


숨기고 싶은 본능으로 인한 나의 행동은 이전과는 다르게 속 시원함이 없는 수업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신기한 건 편하지 않은 마음이 들고 교수님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래도 괜찮다'라는 말이 머리와 마음 가운데 어디선가부터 살며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았음 '난 왜 그랬을까?'라며 못난 나라며 불필요한 부끄러움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 그럴 수 있어'라며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힘이 생겼다. 그토록 바라던 정신적 힘은 지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의 힘 (하나님의 힘)이 모두 복합적으로 내 안에 들어오면서 생긴 게 아닐까 한다. 글을 써 내려가며 내 안에는 여전히 글로 풀어내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다. 보통 같았으면 그냥 만족하며 잠이 드는데 이상하게 묘하게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약간의 찜찜함과 어렴풋한 행복감만으로 감사한 하루이고 앞으로의 삶이 조금 기대가 된다. (열등 감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 특히 한국에서?라는 질문이 살며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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