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바뀌는 머릿속 생각들

겸손

by 그레이스 조


20대 때는 효율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합리적이고 나름 똑똑한 것이라 믿으며 살았다. 30대 중반쯤이 되어 가면서부터는 꼭 그렇게 효율적으로 실용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더라도 실용주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보기엔 가성비가 좋지 않아 보이고 어쩌면 약간은 바보처럼 보일지라도(예전 나의 생각) 천천히 가도 약간의 손해를 볼 줄 아는 여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좀 느려도 틀려도 그래도 괜찮아 라며 종종 스스로 되뇐다. '그래도 괜찮아'는 그동안 막혀 있던 나의 숨통을 트게 하고 조금은 나를 마음의 여유를 준다.


그동안에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빡빡하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옳고 정답이라고 똑똑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었던 것 같다.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던 모양이다. 요즈음 드는 생각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선 '사람이 조금은 모자라면 뭐 어떤가? 머 그럴 수 있지!'이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며 살아가려 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에겐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려 해 볼 것이다. 꽤 오랫동안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해왔던 일들이 꼭 옳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찾아오는 당혹감을 경험할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어떤 것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몇 년 동안 내버려 두고 이제야 나의 잘못된 언행을 반성하고 고쳐보려 하는 것들이 있다. 때론, 나도 다른 이의 생각이 다르지만 같이 옳을 때도 있었고 우리 모두 틀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 틀리면 좀 어떠한가.


서로의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그 자체만으로도(가치관이 크게 다르지 않은 선에서) 함께 하는 값진 시간이 되고 성장의 장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아직은 불편함과 기분 나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꽤 크고 그렇게 이어지기도 했었다(생각해보면 참 그럴만한 일이 아닌데 말이다). 젊은 세대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은 슬펐다.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사람의 사고는 생각보다 많이 발전하고 이전보다 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됨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짐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자발적으로 계속해서 배움을 쫓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게다가 머릿속에도 꽤 오랫동안 남는다. '나'라는 주체가 참여함으로 감정도 함께 소비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은 내가 경험한 작은 것들을 기억한다. 가령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 길을 잃어버려 헤맸던 경험들 말이다. 그래서 이미 몇천 년 전에 시작한 질문과 답하는 방식의 토론이 여전히 서구 학교에 크게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우선 먼저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들 간에 존중이 배어있는 소통이 되려면 인성교육과 생활 속의 말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우리 모두는 겸손해야 하고 조금 안다고 우쭐하거나 모른다고 방어적이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실은 전혀 없다. 이 또한 머리로는 아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잘 안 되어 어쭙잖은 지식을 내세워 은근히 잘난척할 때도 있는 듯하고 이것이 소통의 벽을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겸손해지고 한결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루에 한 번 아침마다 머리와 마음속으로 새기며 노력 중이다. 완벽과 성공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탓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 한다. 그리고 책을 보고 긍정적이고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언어 공부를 한다. 다시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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