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만난 여행친구들

프롤로그 - 걷는 여행자, 나는 어떻게 여행벽에 빠져들었나

뉴질랜드가 <마흔셋, 늦바람 여행의 시작>이었다면,

늦바람 난 여행벽에 날개를 단 건, 고재열 여행감독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2017년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시사인 기자로 일하던 그가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여행팀을 모집하는 포스팅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스위스 사진에서 포토샵으로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등 인공적인 것들을 지워내면, 그게 바로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풍경이다."


바로 그에게 여행에 관심 있다는 DM을 보냈고, 어느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누군가 이 여행에 참가할 사람은 어떻게 확정되느냐 물었고, 그는 티켓팅한 항공권을 올리는 선착순이라고 답했다. 때는 2017년 초였고, 여행 일정은 그 해 추석이었는데, 순식간에 10여 명의 항공권 캡처 사진이 올라왔고. 행여 경쟁에 뒤쳐질까 엉겁결에 나도 티켓팅 대열에 동참했다.


카즈베기룸스호텔.JPG 고재열 감독과의 첫 해외여행. 조지아 카즈베기 룸스호텔 전경
DSC01087.JPG 나의 두 번째 가이드. 한국말 억양이 매력 있던 아르미네


그렇게 일면식도 없던 그와의 여행을 앞두고 있던 여름.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제천의 어느 계곡으로 10여 명이 MT를 가는데 얼굴도 익힐 겸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호의가 느껴지긴 했으나 낯설고 생경했던 초대에 무슨 용기가 났던지 선뜻 응했고,

14명의 난생처음 만나는 이들과 먹고 마시고 떠들었던 1박 2일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했고, 기대했던 것보다 썩 유쾌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 낯선 친구들과의 시간은

지금껏 사회활동에서 맺어온 관계들 속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그 후로 조금씩 새로운 여행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한 달이 멀다 하고 짐을 꾸렸다.


직업도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이들과 함께

한적한 섬의 솔숲을, 조용한 지방 소도시의 거리를, 같이 걷고 밥을 해 먹고 술을 나누는 시간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남해와 서해의 섬에서 캠핑을 하고,

울릉도에서 카약을 즐기고, 태백산의 겨울 일출을 함께 맞았다.

니카타에서 사케를 맛보고, 삿포로에서 위스키를 나누었으며,

이름도 처음 들어본 캄챠카 쿠릴호수에서 러시아 불곰을 같이 보았다.


여행친구들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에 갈 수 있었고,

치앙마이에서 알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발견했으며,

인생 최고의 버킷리스트였던 마추픽추도 우유니도 볼 수 있었다.


IMG_1821.JPG 최고의 액티비티를 함께했던 울릉도 카약 투어
DSC04796.JPG 함께 걷고 몸을 담갔던 캄챠카의 노천 온천
DSC09300.JPG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함께 마주한 인생 노을


지금은 기자일을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자처하며 본격적인 여행기획자의 삶을 살고 있는 고재열과는

2017년 조지아 아르메니아로 시작해서, 올해 노르웨이 로포텐 트래킹까지 10차례 해외여행을 함께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는 여행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감독이었고,

나는 그의 연출대로 특별한 여행의 순간을 맘껏 즐기는 배우였다.


그와 그를 통해 만난 여행친구들 덕에 나의 늦바람 여행벽은 날개를 달았다.





마흔셋에 시작된 늦바람 여행, 벌써 10년이 흘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38개국 110여 개 도시를 찾아 떠났다.

여행 전문가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직장인으로선 누리기 힘든 행운이었고.

아직도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할 만큼, 특별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


이미 흐릿해지는 기억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그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다.

낯선 설렘과 떨림으로 벅찼던 시간들이 내 머리나 가슴 어느 한구석에 아직 살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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