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걷는 여행자, 나는 어떻게 여행벽에 빠져들었나
70년대 초반에 태어나, 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대학을 다녔다.
97세대라 불리기도 하고, X세대라 불리기도 하는 딱 그 시대의 시작에 청춘을 맞이했다.
학생운동이 점차 쇠락해가던 시기였지만, 복학생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평범치 않은 청년기를 보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고시는 물론, 공부 한번 제대로 한 적 없고, 마흔을 훌쩍 넘기고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아보았다.
경제적 궁핍과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조금의 여유가 생겨도 나를 위한 시간을 쓰는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해외 여행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청춘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한번은 기회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국제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세계 학생운동 포럼이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데, 항공권은 물론 모든 체류비를 지원해주니 가보지 않겠느냐고. 지금이라면 열일을 제쳐두고라도 무조건 갔겠지만, 그 때는 그마저도 내 것이 아닌 걸로 느껴져 후배에게 기회를 양보했었다. 그 때 룩셈부르크에 갔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여튼 그렇게 순탄치않은 청년기를 보내고, 내 나이 마흔 셋.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아닌 곳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첫 해외 여행지는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이었다. 워낙 산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해외 여행을 간다는 건 뭔가 특별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던 다울라기리의 산 그림자와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일출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지만, 늦바람난 해외 여행벽이 시작된건 이때는 아니었다.
한두해가 더 지난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죽기전에 걸어야 할 길 25(?)'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밀포드, 루트번, 후커밸리 등 뉴질랜드 트래킹 코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항공권을 검색하고 뉴질랜드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뒤지고 있었다.
그렇게 진짜 여행같은 여행이, 아는 이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세계로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이민간 후배가 살고있던 오클랜드에서 이틀을 머문 후, 드디어 홀로 남섬으로 향했다.
한두마디 겨우 더듬대던 서바이벌 잉글리쉬 수준도, 버스도 기차도 트램도 없는 대중교통 시스템도, 처음 묵어보는 혼성 도미토리의 삐걱대는 침대도 두렵지 않았다.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여행자의 설렘과 묘한 흥분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
햄버거와 맥주 한병을 두고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내 곁을 가득 채우는 평화로운 공기가 너무 감사해 울컥했던 퀸즈타운과의 첫 만남.
고요하고 한적한 호숫가, 따스한 햇볕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마을 한켠에 소소히 펼쳐지던 플리마켓. 그 고즈넉함에 반해 언젠가 꼭 사랑하는 이와 다시 찾으리라 마음 먹었던 와나카.
그리고 2박 3일 내내 반지의 제왕 한가운데로 들어와 호빗이 되어 걷고있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던,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고 쓸쓸한 이국적 풍광의 루트번 트랙.
늘 사람들 속에 있지 않으면, 웬지 모르게 불안한 일상을 살아왔던 지난 날.
"이토록 완벽하게 낯선 세상 속을 혼자 걷고 있는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었나 싶었고.
가벼운 긴장과 깊은 평화로움이 동시에 찾아오는 그 순간의 감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나의 늦바람난 여행벽은 시작되었다.
마흔셋에 시작된 늦바람 여행, 벌써 10년이 흘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38개국 110여개 도시를 찾아 떠났다.
여행 전문가들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직장인으로썬 누리기 힘든 행운이었고.
아직도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할만큼, 특별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
이미 흐릿해지는 기억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그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다.
낯선 설렘과 떨림으로 벅찼던 시간들이 내 머리나 가슴 어느 한구석에 아직 살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