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밖으로만 던졌을 뿐

by 박종성
박쥐의 처지를 보라.

박쥐는 외롭다. 새의 부류에 속하자니 새끼를 낳고, 짐승에 속하자니 날개가 있다. 쥐라고 하기도, 새라고 하기도 애매한 처지다. 어느 한쪽에 소속되어야 안전한데,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고 따돌림 당한다.

그러나 박쥐는 박쥐일 뿐, 굳이 어느 쪽에 소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박쥐는 박쥐면 족하다. 오히려 박쥐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만 내게 속했을 뿐이다.

나는 내게 속했다! 이 자존감이 세상을 당당히 홀로 가게 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일 필요 없으니, 푸른 건 푸르다고 하고 붉은 건 붉다고 말한다. 홀로 가는 길은 자유로운 길이다.

_ 박수밀, <오우아>


경영 컨설턴트는 유목민입니다. 프로젝트, 다시 말해 일정 기간 내에 풀어야 할 과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죠. 제 경우에는 에너지, 스마트시티, 통신 분야에 두루두루 투입됩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해봤다 싶으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맡게 되면 언제든 초심자와 문외한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새로이 만나는 산업 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비즈니스 룰과 용어부터 익혀 나갑니다. 무엇을 물어보든 시원시원하게 설명해주는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 없습니다.


반면 인터뷰 계획을 정성스레 짰지만 결국 내가 비전문가임을 온몸으로 증명해버리고 말았을 때 한없이 작아지곤 합니다. 연차는 쌓여가는데 초심자 생활이 계속 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지더군요. “내가 남들보다 잘 알고 잘하는 분야는 무엇이지?” “컨설팅 분야에 계속 몸담으면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떤 사람이 되는 거지?”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물음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프로젝트를 하다가 알게 된 전문가 한 분이 제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묻더군요.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겠냐고요. 의아한 마음에 그 이유를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설명해주었습니다. 컨설턴트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임원들과도 자주 소통하기 때문에 시야가 넓다고.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해봤기 때문에 성공 요소와 위험 요소를 본능적으로 잘 안다고 말이죠. 요컨대, 그에게는 컨설턴트라는 직군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겁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산업 전문가가 아닌 컨설턴트를 중요하고 긴급한 프로젝트에 초대하는 이유가 다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지 않은 것이 낯뜨거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데도, 정작 저는 시선을 바깥으로 던진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겁니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지 않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하고 결여된 것만 집어낸 거죠.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경험 해보신 적 있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집중력을 담당하는 근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