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by 박종성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기차보다 생각을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없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거대한 생각은 거대한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새로운 장소를 필요로 한다.

_ 박홍순, <일인분 인문학>


쇼펜하우어는 독서 예찬론자들에게 일침을 놓았습니다. “오직 책을 통해서만 삶과 세상을 이해하려드는 건, 여행 가이드가 오직 관광 책자만 보고 현지 사정을 파악하려 하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심지어 ‘다독은 인간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자해 행위’라고까지 표현했죠. 위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자꾸 짓눌리다보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의 시선이 바람직하다거나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어요. 굴절이 심한 색안경을 쓴 채로 세상을 바라봤을지도 모르니까요. 가끔은 내가 가서 직접 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유해야 합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현실 세계와 부딪쳐 가며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온 지식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죠. 구글은 거대한 데이터 센터와 첨단 알고리즘을 자랑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얀 네모 상자 안에 단어를 넣고 검색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두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모조리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대요. 다만 평소에는 파일 탐색기 열어보듯 내용물을 훤히 들여다볼 수는 없고, 일정한 자극이 가해져야만 하나둘씩 호출되는 거죠.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노래라고 해도 첫 소절만으로 곡 전체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의 오감(五感) 전구에는 쉴 새 없이 불이 들어옵니다. 비단 바깥 세상의 풍광 때문만은 아니예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그의 마음속 풍광 또한 우리를 깨웁니다.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보던 책은 잠시 덮어두고 어서 여행을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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