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솜은 마녀'라는 전언 아래 숨겨진 뜻은 바로 먹혀들었다. 반 아이들은 박선희가 나르는 소문들 들었고, 들은 대로 믿었다.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해도 믿는 척했다. 단태희의 의중을 살피는 아이들의 레이더는 언제나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으니까.
독고솜에게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도 이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점점 독고솜이 진짜로 불길하고 무서운 존재인 양 행동했다.
이상하기도 하지. 독고솜과 어울리지 말라는 메시지만 받아들여도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어쩌면 애들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해 좀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으니까.
_ 허진희, <독고솜에게 반하면>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곧 에너지’라고 했습니다. e=mc2라는 유명한 식으로 표현했는데요. 1kg짜리 물체에는 무려 2,500만 수도권 인구의 1년 전기 사용량과 맞먹는 에너지가 들어있다는 겁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거나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겉으로는 다 비슷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일단 대화를 시작해 보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서사가 끝도 없이 흘러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e=mc2가 의미하는 바를 제멋대로 납득하게 됩니다. ‘누구나 상당량의 에너지를 품고 있지만, 단지 그것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어떤 날에는 주변 사람을 대하는 저의 태도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살펴보려 하지 않고 성급히 예단하진 않았는지, 대화의 프레임을 멋대로 짜 놓고 상대방을 그것에 우겨 넣으려 했던 건 아닌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건 아닌지.
김춘수 시인이 저에게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리고 바톤 터치를 하듯 나태주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이, 거리를 좁히지 못해 결국엔 스쳐 지나가버린 그 사람이, 뇌리에서 영영 잊혀진 그 사람이 저마다 독특한 색과 향을 가진 꽃인데, 나의 성급함 때문에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건 아닌지...
새로운 한 주는 꽃 한 송이를 지긋이 바라보듯 사람들을 만나 보려 합니다.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의 예상하지 못했던 공명(共鳴)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