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빈자리
아버지를 친정에 모셔다 드리고 나니 빈자리가 아쉽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시던 얼굴이 슬프다.
"아버지가 있는게 없는거 보다 나을걸" 엄마에게 화내지 말고 잘하라고 압박을 한다. "백화점이 추웠나보다. 아빠 재채기한다. 병원갔다왔다. 도배는 개판이다.","그 정도면 되었지 깨끗하게 살아. 재채기 하다 말겠지 병원까지 갈 상태는.."
내가 도배업체부터 견적까지 알아서 해주었지만 불만이 많은 엄마에게 결국 짜증을 내게 된다. 아버지 아플까봐 재채기에도 병원까지 가는 엄마는 아빠의 건강보다 병간호할 엄마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이 불안이 잘못인 것 같진 않다. 엄마는 지혜롭지 못하다는 한탄이 들면서 좀 더 자식들에게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라면 좋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버지는 살고 있는 집과 모든 보험을 내동생 장남 명의로 해놓으셨다. 그것도 노후에 본인을 책임질 것은 장남이라는 사회적 책임자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물론 내동생 장남은 착하다. 주말에 꼭 들러 아버지를 보고 가고 옆에 사니 갖은 일들이 모두 동생의 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슬픔은 퇴직 후 쓸쓸하게 계신 시간에서 느꼈을 아버지의 외로움이고 그것은 그렇게 놔둔 엄마에 대한 짜증이다.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요양보호사하신다고 지방살이까지 하면서 다른 노인네를 돌보느라 아버지는 늘 혼자셨다. 그게 슬펐다. 그렇다고 내가 놀아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아버지는 집돌이셨다.
거의 인지 능력이 사라질 때 쯤 약 2억이 든 예금통장을 엄마한테 내미셨다는데 슬프기 그지없다. 평생 돈 모으고 쓰지도 않고 사시다가 이리되셨으니 남자의 삶은 너무 슬프다.
그럼에도 장남은 마누라가 있으니 아버지를 집에서 모시지도 못한다. 직장 다니는 딸도 마찬가지로 바쁘니까 관두어야 모실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졌다.치매와 파킨슨 병이 아니라 퇴직 후 외롭게 홀로 지내신 시간이 그려져서이다.
건강하고 여유있으실 때 좀 더 즐겁고 누리시지 못한 아까운 시간 말이다.
우리는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경제 부흥을 이룬건 우리 세대 이런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사람들이 초고령사회를 만들었다. 국가경제가 선진국 못지 않게 선진화되었는데 이 한몸 누릴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