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사는 그녀_첫 번째 이야기
파리에 사는 그녀_1부
"왜 책을 좋아하세요?
"혹시 꿈꾸는 나만의 공간 있으세요?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서 책 읽고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제가 디자인해드리고 싶은데요.
그 꿈꾸고 계신 공간이요."
어느 날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물어온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통의 경우라면 가볍게 무시할 것이고,
호기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약 2초쯤 궁금해하다가 무시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에 반응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런 무모한 꿈을 꾸어봤거나 한 번이라도 그걸 실행해본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소하고 무모한 도전에 기꺼이 참여할 사람이 있을까?
간단한 프로젝트 소개와 공간 비주얼을 인스타에 올려놓고, 나는 또다시 '자기 불신' 모드로 들어간다.
"괜찮아. 댓글 하나 없어도. 나는 부끄럽지 않아! 나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새벽에 잠은 안 자고 혼자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나를 애구(반려견)가 애처롭게 바라본다.
"애미가 참 애쓴다." (애구는 나를 '애미'라고 부르는 아주 예의 바른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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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지켜보다간 조바심이 날까 봐 애써 잠을 청했다.
다음날 살포시 확인해본 포스팅에는 우려와는 달리 꽤 많은 용기의 댓글이 올라와있었다.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세상 따듯한 분들이 다 내 북스타 그램으로 모인 듯, 그들의 말 한마디마다 온정이 넘친다.)
그런데 모두 응원과 격려를 할 뿐 참여의사를 보이는 분이 아무도 없다..
그래,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사람을 뭘 믿고 자기 얘기를 하고 신상을 털어놓는단 말인가.
이렇게 다시 한번 의기소침해질 무렵,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
요즘 피드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디자인에도 사람향기 가득 채워 주실 분 같아요.
프로젝트 진행은 잘 되고 계시나요?"
앗, 이 사람 뭔가 느낌이 좋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너무 반가운 마음에 지나치게 긴 장문의 글로 나의 온 마음을 담아서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사실 크게 명확하지 않았는데 쓰면서 오히려 정리가 돼버린)를 담은 답장을 보냈다.
"너무너무 멋진 아이디어예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저처럼 디자인 감각은 없지만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여러 아이디어를 내보면 많은 콘텐츠가 쌓일 것 같아요!
저도 그럼 한 번 의뢰를 드려봐도 될까요?"
두근두근.
파리에서 사는 그녀와
뉴욕에서 사는 나.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디자인 리서치'라고 쓰고
'인스타 스토킹'이라 읽는다.
인스타그램으로 누군가의 취향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찾아낸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방식이다. 그런데 포스팅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내 머릿속에 희미하게 이 사람이 꿈꾸는 공간이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렇게 한 번도 안 해본 방식으로 나의 첫 '공간 프로젝트' 주인공이 될 그녀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김소라.
그녀는 누구인가?
당당함.
따듯함.
사려 깊음.
꿈꾸는 사람.
이런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산다는 약간의 우월감이나 과시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꿈을 이뤄가며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까지 출판한 멋진 그녀! 언뜻 보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하지만 그녀가 쓴 글에는 그저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 녹아있었다.
철저하게 타인인 그녀를 알아가면서 왜 내 마음이 뭉클해지는 걸까?
아마도 뉴욕이란 낯선 곳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나의 모습이 보여서가 아닐까.
안녕하세요, 소라 작가님!
제가 부탁드린 스토리 구상하는데 아마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가 리서치한 것 공유합니다. 인스타에 많은 생각과 사진을 공유해주신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공간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아서 좋은 시작할 거리가 생긴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사진 말고 서재에 관한 사진 찾으신 것 있으시면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다시 한번 설레고, 꼭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키워서 저도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그런 사람이자,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꿉니다.
Sent.
그렇게 어설픈 리서치와 함께 그녀에게 첫 메일을 보냈다.
머릿속엔 이미 에펠탑과 센 강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
그녀가 영감을 받는 책의 표지가 멋지게 펼쳐져있는 책장,
머리 위에 따듯하게 내려앉는 조명들이 비추는 그런 로맨틱하고 아늑한 그녀만을 위한 꿈의 서재가 그려지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끔,
책 읽으며 살고 싶은 게 제가 꿈꾸는 서재예요."
누군가의 꿈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눈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 이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렇게 찾아 헤매던 내 인생의 'Purpose'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게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나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전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