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침묵은 서로를 보완한다
"의도적으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갖는다.
우연히 읽게 된 '침묵이라는 무기' 책의 앞표지에 실려 있는 말이다.
사실 내가 침묵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는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는 동안 나의 관심사는 주로 '영어' 또는 '말 잘하는 법'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 잘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말하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미국에 와서 디자인 공부를 다시 시작한 나에게 영어는 언제나 고민이 대상이었다.
나름 독하게 공부해서 생활하는데 지장도 없고 주변에서 나름 '그 정도면 잘하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니 학교에서의 영어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청산유수처럼 별거 없는 것도 참 있어 보이게 말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내가 배운건 '더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닌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이었다.
존중함을 잃어버린 사회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뉴스를 볼 때마다 난 참 놀랐던 기억이 있다. 뉴스 앵커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두 게스트를 연결해서 서로의 의견을 토론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점잖게 생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각자 쟁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앵커가 한쪽에 의견을 묻고 먼저 한쪽 전문가가 말을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쪽 전문가가 말을 자르면서 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전에 말하던 사람이 멈추는 게 아니라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한 사람의 말 위에 다른 말이 쌓이고 '건전한 토론'이 되었어야 할 대화는 곧 누가 더 끝까지 말하는지를 알아보는듯한 난장판으로 변해버린다.
물론 한국에서도 서로 의견이 안 맞는 양측이 이렇게 서로의 말을 끊어가며 언쟁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상대방의 말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는 이런 문화를 보면서 '과연 미국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존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 직장에서 침묵이 통할까?
경력이 늘어갈수록 '말을 더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늘어만 갔다.
마침 이직한 직장에서 화려한 언변술로 무장한 동료를 만났다.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회의마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던 그녀는 언제나 주목받았다. 물론 나도 그녀의 언어능력을 부러워하며 주로 회의에서 듣는 입장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된 건 그 많은 말들 속엔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말하는 사람은 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마 그녀를 비롯한 많은 나의 동료들이 그랬을 것이다. 조용히 듣다 보니 그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말'을 위한 '말'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말잔치에 나까지 굳이 의미 없는 말을 더할 필요가 없다 싶어 조용히 듣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동양인은 내성적이다' 또는 '동양인은 자기표현을 할 줄 모른다'라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어떻게 하면 적게 말하지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말과 침묵의 균형이란 게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것이었고, 또한 침묵하다 가끔 던지는 말엔 꼭 핵심이 있어야 했다.
나는 운이 좋게 이런 나의 성향을 잘 파악해주고 인정해준 팀원들을 만났다. 어느 날부턴가 조용히 있어도 회의 끝에 나의 의견을 물어주는 팀의 대표와 상사들이 생겼다. 실컷 얘기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꼭 회의 끝에 나의 의견을 물어주었고 그 덕에 동료들도 나의 말에 무게를 두고 들어주었던 것 같다.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나는 더 이상 미국인들처럼 말하려고 나의 온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다만 언어의 논리력 자체를 키우려 더 많이 읽고 매일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적게 말하고도 그 말의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올바른 침묵의 방법은 아니다.
침묵이 소통의 한 방법이 되려면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침묵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말과 침묵의 균형을 지키고 나만의 무기로 닦아갈 수 있는지 등 배워나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너무도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통해 나만의 고요를 찾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