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그녀에게 쨍함을 선물하고 싶다.

기분이 쨍해지는 공간이 필요해요! _ 박도 작가 2편

by 지금은 디자이너



컬러풀한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서재에 들어오면 기분이 전환되는 쨍한 그런 곳이면 좋겠어요. 언젠가 정말 그런 서재를 갖고 싶고요. 아 그리고 늘 제 방 카페트나 소파에서 저를 기다리며 잠자는 온도를 위한 공간도, 서재 한 켠에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공간을 원하냐는 나의 질문에 박도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통 꿈꾸는 공간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물으면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아늑한 공간. 따듯한 공간. 모던한 공간.


그래서인지 '쨍한 공간’ 이라는 흔치 않은 표현은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는 내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주인공, 온도의 취향은 못 물어봤는데, 마음에 들어할까?





박도 작가의 공간을 디자인할 때 내 머릿속 그녀는 이제 막 뉴욕에 와서 정착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취향을 가득 담은 공간을 꿈꾸지만, 이 빡빡한 도시에 막상 살게 되면 가구나 소품에 큰돈을 쓸 여유 따위는 없어진다.(물론 부모님 찬스나 금전적으로 성공해서 오시는 분들 제외).


분명 숨만 쉬고 사는 것 같은데, 왜 통장 속 돈은 빛의 속도로 사라져 가는지, 참 달콤 살벌한 뉴욕이다.


그녀의 공간을 디자인하며 난 또 심한 감정이입을 하며 내가 미국에 온 뒤 지나왔던 많은 공간들을 떠올려본다.


각자마다 나름의 사연을 담은 그 공간들은 뜨겁고도 활활 타오르던 나의 가슴속 열정도 한순간 식혀버릴 만큼 참 아름답지 못했다. 언제 빨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카펫이 깔린 반지하방, 어디서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찾아와 주시는 바퀴벌레 군단들, 너무 빨라서 처음엔 새가 출몰한 줄 알았던 초특급 날쌘돌이 쥐(쌍시옷을 쓰고 싶지만 지성인들의 공간이니 참아본다)까지..


'아, 지나 보니 그것도 다 추억이었네!’ 라고 껄껄 웃으며 회상하고 싶은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도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 기억도 있는 모양이다.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큰 창문과 높은 천장,

분위기 있는 2층 서재가 있는 공간.


주황색, 녹색, 인디언 핑크, 민트색 등 알록달록 기분이 화창 해지는 색으로 가득하지만, 멋진 뉴요커의 공간답게 모던함을 잃지 않는 그런 공간. 집 나간 영감도 불러일으킬 만큼 화려한 색상의 예술작품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창밖을 바라보면 뉴욕의 스카이라인 뒤로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는 그런 곳.


이 정도면 기분이 쨍하게 밝아지지 않을까?



온도야 널 위해 특별 주문한 원목 침대야. 어때? 마음에 드니?





내가 원하는 건 우선 모든 색을 받쳐주는 빈티지하면서도 크고 넓은 원목 책상이다. 책상을 중심으로 책장과 선반, 꽃병, 조명, 연필깎이, 그림 등을 방구석 구석에 배치하며 내 눈에 가장 행복한 정사각형의 뷰를 만들고 싶다.


나에게 서재란, 책을 읽긴 하지만 주로 글을 더 많이 쓰고 싶은 공간이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내 시선이 닿는 어느 곳이든 나에게 가장 아름답길 바란다.


주위가 산만해서 책을 읽다가 공책에 글을 쓰고, 아이패드로 다시 글을 옮겨 담고, 이내 또 그림을 끄적거리는 나에겐 너무 깔끔한 것보단 적당히 어지러운 자연스러움이 더 편하다.



사랑스러운 온도야. 그리고 조금 덜 사랑스러운 박도 작가. 둘다 쨍하게 행복하길 바래, 최소한 이 상상의 공간에선.






사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 나는 박도 작가를 '그녀'라고 부르기도 조금 오글거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인스타에서 만난 '어색한 인친'쯤이었지만 이 '나만의 서재'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급속로도 가까워졌고, 심지어 우리는 두 번이나 직접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고작 프로젝트 하나 끝내 놓고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던 나에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초심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코로나 블루와 함께 우울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가던 나를 정신 사나운 B급 유머와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미치광이스러운 말들로 건져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애정결핍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타고난 글쟁이와

깊고 깊은 애정의 옹달샘을 가진 애정과다의 나.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을까?


이래서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질러봐야 하나보다.

나의 인생에도 갑자기 찾아와 나를 짓누르던 어둠이

걷히고 쨍함이 비추는 듯하다.



* '나만의 서재' 공간 프로젝트는 뉴욕에서 저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능력자, 신비주의 후배 디자이너가 함께합니다.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저를 대신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준 든든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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