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서 만난 그녀_박도 작가 1편
아, 이제 막 뉴욕에 왔구나!
뉴욕의 오래된 빈티지한 건물들, 옐로 택시들이 즐비한 길거리 풍경, 크림치즈가 잔뜩 든 베이글 사진까지. 이제 막 뉴욕에 온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아마도 이들은 아직 이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서일 것이다. '설렘'이라는 필터를 거친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처음 뉴욕에 왔던 그 순간이 잠시 떠오르는 듯하다.
솔직한 서른 살
그녀는 본인의 찌질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솔직한 서른 살'이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라고 한다. 또한 흔치 않게 손글씨로 직접 일기장에 쓴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재미있는 게 있을까? 어릴 적 맨날 언니 일기장 훔쳐보다 한 번씩 난리가 나던 기억이 난다.
읽다 보니 그 거침없는 말투가 참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녀의 글들.
솔직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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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 인간과 100살까지 산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결혼 제도는 죽기 전에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억울하게 느껴질 일 중 하나다. 일단 너무 질린다. 7년 동안 한 인간하고 매일, 얼마나 새로운 대화를 쥐어짜 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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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사라지니 성욕도 그닥.
누군가와 오랫동안 연애해 본 사람이라면, 같이 살아본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뜨거운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을까. 평생 한 인간과 산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 다들 하지만 무슨 금기사항처럼 쉽게 글로 써서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는 나는 왜 이런 글을 쓰지 못할까?
최근에 안 사실은 나는 글 쓸 때는 꽤나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INFJ 페르소나의 옷을 입는다. 그러한 성격 탓에 혹여나 내 글로 누군가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수없이 많은 필터를 거쳐 결국 온화한 현자의 언어만 남게 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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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인프제)는 세상에 0.3프로에서 1프로 미만의 가장 희귀한 성격 타입으로, 내면의 세계가 지하 100미터만큼 깊고 심오해서 웬만한 사람은 다 질식사시킬 수 있고, 세상에 대한 따듯한 관점을 잃지 않는 이상주의자지만, 현실에 뿌리를 내린 논리적인 성격 탓에 항상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생각에 괴로워한다.
찌질한 그녀를
뉴욕에서 만나다
박도 작가.
나와 결이 다른 듯, 같은 듯.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거칠고 솔직한 글을 쓰는 그녀는 낯을 가렸고, 찌질하다던 그녀의 얼굴엔 수줍은 아기 같은 귀여움이 있었다. 물론 그녀도 나의 실제 모습이 예상하던 것과 달라서 놀랐다고 한다. 어떤 모습을 기대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낯을 가리지 않는 시원시원한 말투의 나와,
생각보다 차분하고 어색함이 묻어나는 그녀.
EN파(외향적 인간) 중에 가장 해맑다는 그녀와,
IN파(내향형 인간) 중 가장 내성적이라는 나.
역시 보통 복잡한 인간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궁금하고 재미있다. 일차원적으로 밝은 사람에겐 흥미가 가지 않는 나에게, 나와 다른 결이지만 동일하게 복잡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한다는 건 너무도 즐거운 일이다.
복합 다중인격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의 대화를 시작했고, 친구, 인간관계, 직장생활, 사랑 등 시공간을 뛰어넘는 별의별 주제로 쉴 새 없이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다.
쨍한 인생이란
우리가 4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때쯤 미안하게도 그녀가 자신의 에세이를 건넸다.(박도 작가를 만난 시점에 난 이미 그녀의 나만의 서재를 완성했었다. 그것도 3주 전에.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서 그 사람이 쓴 책도 안 읽고 디자인을 하다니..문득 부끄러워진다)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에 그녀를 꼭 안아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는 길 그녀가 준 책을 펼쳤다. 30대에 접어든 어느 한 사람의 찌질한 인생을 솔직히 적어낸 책이다. 곧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이다. 완성되지 못한 우리네 인생이 다 그렇듯 찌질하고 불안정하며 짠하다. 하지만 그 짠한 인생 속에서도 박도 작가만의 솔직함과 유머스러움이 섞여있어 해가 저물고 밤이 되도록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사실 박도 작가와 만나서 얘기하며 몇 번 울컥했지만, 날씨가 화창하고 쨍한 뉴욕의 평화로운 공원 한가운데서 주책맞게 눈물바람은 하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나 역시 나와야 될 눈물은 언제든 나오게 되어있나 보다. 책을 읽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챕터에서 무너졌다. 박도 작가의 동거인 '준 군'의 형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었다.
애쓰며 사는 인생.
좀 대충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
사람에게 상처 받지만
영원히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예민하고 까칠하려면 따듯하지나 말지.
왜 이 모든 게 다 섞여서
우리는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하나.
꿈꾸는 나만의 공간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기분이 쨍하게 좋아지는 밝고 화사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책을 읽고 나니
그 '쨍한 공간'이라는 말이 한층 마음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