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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미쟤씨 Feb 10. 2022

암에 걸렸다고 불행하다는 말은 틀렸다.

만성질환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암에 걸렸다고 불행하다는 말은 틀렸다.


젊은 여성의 아픈몸에 향하는 납작한 말 속에 담긴 여러가지 상황과 점점 납작해지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회가 틀렸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가 어떤 삶을 살고 삶에 얼마나 선택권을 가졌는지에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때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정말 물어봐주지 않았다. 먼저 마음대로 오해하거나 불쌍히 여겼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일상을 꾸리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쓰고 싶은지 두건이나 모자를 쓰고싶은지,  아픈 여자는 동정받거나 그럼에도 살아가는 멋있는 사람이 되는지(무엇이든 여자가 눈에 띄거나 하는 것에 대한 대상화),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돌봄을 받고 싶은지, 여성이 아프면 돌봄받을 다양한 선택지가 없는지, 왜 아프면 혈연가족만이 돌봐야 하는지, 왜 돌보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인지,  오래 투병할 수록 외롭고 고독한지,  아픈몸이 되는 순간 내 나이보다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 드는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청년으로, 노동자로 기대되는 생애주기만성적인 질병이라는 것과 만나게 되며 단번에 어긋나는 삶을 아가게 되는지 나는 계속 주변과 사회에 물음표가 커져가고 있고, 지금도 여전하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돌봄에 대한 나의 사회적 욕구와 요구는 그닥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픈몸이 되는 순간 임금노동 할 수 없는 몸으로 치환된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임금노동이 가능한 조건이 너무나 많은 조건을 요구하는 탓이다. 돌봄은 그러나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에서 처음으로 내 몸을 관통하는 질병서사를 세상에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가장 화두로 놓고 있던 것은 만성질환자가 된 암환자가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치환된 나의 고군분투기였고 당장의 치료 이후의 삶에서 필요한 돈과 노동자로서의 자기선택지를 위한 삶이었다.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목숨과 정당하지 않음에 얹혀 착취하고 있다는 뼈아픈 진실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선택이 조금 덜 착취적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런 내가 너무 이상적이고 미련하며 현실적이지 못한 존재인가. 누구보다 착취당함에 내가 이용되었던 경험이 때문에 나 또한 착취를 줄여나가고 싶을뿐이다.


그래서 묻고싶다. 젊은 암환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데, 암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픈 젊은 몸들이, 오랜 세월을 관통해온 아픈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사회의 ‘정상성’에 비껴 어떻게 살고있냐고. 그 경험을 찾기 어려워서 나는 좀 외롭고 고독한데,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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