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하 Mar 23. 2021

사랑에 대한 짧은 이야기

연애라는 단어에 대한 참견


한국에서는 별로 유효하지 않을 급진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급진적이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연애라는 행위의 행동강령들과 도식들을 버거워했다. 내 눈치와 사고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도달하고 싶지도 않은 영역이었다. 그래서 제일 괴로웠던(그러나 자극적이어서 보긴 또 보았던) 프로그램은 하트시그널 등 연애 관련 컨텐츠들이었다. 댓글창이나 사람들 반응을 보면 연애라는 행위에  한정하여 이건 이래서 누가 눈치가 없었던 거고 이건 또 이래서 누가 나빴던 거랜다.

나의 깊은 심연에서는 나도 저 욕먹는 사람처럼 모르겠는데 어떡하지..싶었다. "우린 도대체 무슨 사이야?"라는 뻔한 대사도 워낙 모든 것에 거리낌이 있는 사람이라 그걸 꼭 애인/애인 아닌 사람으로 규정해여 하나 싶었다. 복잡한 감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나도 너무 즐기는 일이지만, 그에 대해 규율을 정해놓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관계란 것을 다 열어놓기만 하면 혼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K-남친/여친: 친밀도 높음, ~~한 정도의 기브앤테이크 가능, 육체적 교류+성관계 가능, 그러나 이런 모습은 보이면 사랑은 식은 것 ! 사랑 아님!! 연락 일순위가 아니면 사랑에 빠진 것 아님!!

K-친구: 친밀도 높음, 하지만 친구 사이에 이정도 기브앤테이크는 안됨, 친구니깐!! 뽀뽀 불가 키스 불가 그러나 포옹은 가능하고 여자는 손잡기 가능한데 남자가 하면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로 명명됨..(?)


이런 건 도통 알질 못하겠고 상당히 유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국에서 특히 강력한 이성-동성의 간극이 나 뿐 아니라 많은 나의 동년배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집에만 가도 이성이면 이미 열애설이고 온갖 성적 모욕감을 주는 말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꽃다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도 동성이면 아무리 그래도 친구이다.

(나에게 수많은 이벤트를 해줬던 친구들에게 왜 날 헷갈리게 했어?하고 따지는 대목이 아님을 밝힌다..)


아마 남사친 여사친이란 말이 생긴 게 2012년이나 그 쯤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웃겼다. 뭘 그렇게 구분지으려고 노력에 노력을 할까. 마치 김치에만 수십가지 이름이 있는 한국인처럼.. 가만보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나오는 말이다. 여자친구 사이에 '사람'이란 말을 넣었다고 의미가 바뀐다니.


(여담으로 여자로 보인다, 남자로 느껴진다 등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성적 끌림을 느낀다는 말에 성별 그 자체을 쓰고 싶지 않다..)


게다가 어디까지가 친구고 어디까지가 사랑(좁은 의미)이라고 생각해? 이런 류의 질문도 많았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웹드라마와 웹툰이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재미있고 자극적인 주제이긴 하다. 그런 글에서 반응 얻은 댓글을 보면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사랑이 고작 그정도 관계의 깊이와 차이를 나타내는 말인가? 오히려 좁은 의미의 사랑이 그 단어를 내려놓고 에로스로 구분되어야 할 판이다. 좁은 의미의 사랑이란 단어가 그렇게 쓰이기엔 내가 사랑이란 단어를 너무 사랑(넓은 의미)한다.


그렇다고 내가 퀴어 당사자성을 가지지 않고 그에 관한 고찰도 하나도 안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퀴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달리하고 싶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란 말도 그냥 "성별+친구" 조합의  언어이거늘. 성별로 나누기 이전에 '사람'과 교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사실 성별이 먼저 들어오진 않는다. 만나고 나니 여태까진 모두 여자였을 뿐이다. (특수한 국가적 상황으로 개인신변을 위해 일부 남성에게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라고 규정된 관계를 행하는 사람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가?하면 아니다. 오히려 무슨 교육과정마냥 사회에서 결혼으로 연결하기 위한 퀘스트로 만들어놓아서 변질되어버린 관계들이다. 결혼이라는 나름의 효율성을 가진 제도를 위해 억지로 관계를 규정해 놓았으니 연애의 참견 레전드 사연과 같은 부작용도 당연히 발생할 뿐이다.


2021년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당연한 말이겠지만, 회사에서 왜 여태 연애를 안했냐는 말을 저번주에 많이 들었다. 나의 남자복과 연애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느 때와 같이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여태껏 너무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감정과 형태로 사랑해왔는데 그 중 연애라고 규정될 법한 형태가 없었을 뿐이다. 마치 내가 반려동물과 살아보지 않아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을 겪어보지 않았듯이.

그리고 20대 중반에 들어선 현재 나의 가장 큰 사랑은 사실 나 자신이다. 여전히 나 자신에게 너무 빠져있어서 사실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항상 우려하면서도 지금은 멈추고 싶지가 않다. (최근들어 변질된 단어인) 자존감같은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느꼈고 그 직관을 신뢰하는 편이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쓰고싶은 나의 지난날 아저씨 사랑도 이와 같은 이야기다. 20대 초반의 나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채워도 채워도 부족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성적 관심이 없어보이는 남자인 늙은 (대신 사회적 지위도 있는) 남자와 있는 걸 매우 좋아했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그들과 하고 말이 통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결국 허울 뿐인 것을 알고 그들과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젊은 여자인 내가 아님을 깨달아 썩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후회할 행동들을 빼곡히 많이 하여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슬프진 않다. 그렇게 헌신하여 얻고 싶었던 늙은 남자들의 인정이 사실은 내가 그들의 지위에 올라서고 싶었던 것이었고, 짧은 노력으로 내가 그들과 동일한 지위에 올라왔다고 착각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


굳이 이 글의 제목을 나르시시즘과 LOVE YOURSELF의 관계라고 짓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단어라며 의미는 좁아질대로 좁아진 사랑이란 단어를 꼭 쓰고 싶었다. 나 또한 사랑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었고 지금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나보다 앞서나간 친구들에게 많은 실례를 범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받았기에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