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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하 Mar 22. 2021

욕먹는 여자들

별별 이유로 욕먹는 여자들에 대해

뷰티 고관여자였던 시절 내 최애 뷰티 유튜버는 '홀리'였다. 

그 이유에는 3가지가 있다. 


1. 유튜버에게 모든 걸 맡겨놓은 듯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서 (90%)

2. 메이크업 실력이 좋아서(6%)

3. 먹을 줄 아는 사람이어서 (4%)


1번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유튜브 댓글을 보면 "언니 ~~해주세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ㅠㅠ", "이렇게 하는 게 더 어울렸을 듯..", "언니! 지적하는 거 아닌데 지적지적~" 등 지적 아니라는 누가봐도 지적, 뭐라도 맡겨놓은 듯한 어이없는 요구사항 등이 많았다. 그러나 더 답답한 지점은 유튜버들이 (대부분 여성, 뷰티 유튜버) 그 요구를 정말 친절한 말투로 다 받아준다는 점이었다. 

홀리는 그런 류의 친절한 말투와는 거리가 먼 유튜버였으나,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여 댓글창도 일반 뷰티 유튜버와는 다른 분위기로 형성되었다. 날씬하지 않은 유튜버의 몸 또한 차별화되었고 나는 그의 외양에서 매력을 느끼진 않았으나 계속하여 찾아보게 되고, 그의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도 욕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먹던 유튜버였지만, 워낙 대형 뷰티 유튜버로 성장한 탓에 나는 이렇게 그가 자질구레하고 사실은 같잖기만 한 욕들을 이겨내나 싶었다. 그러다 그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좋은 기획의도의 다이어트 컨텐츠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다양한 체형을 응원하지도 않고 그냥 미적인 관점의 체형 자체에 관심을 끄자 주의긴 하다. "진짜 건강때문이라도 다이어트하셨으면 좋겠어요 언니 ㅠㅠ"도 흐린눈으로 안 보고 있었는데 건강 상의 이유라면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잘 영상을 챙겨보고 있다가, 몇 주 유튜브 열심히 보기를 관뒀더니 유튜버가 검정 화면에 사과영상을 게시하였다. 나는 어라라..?하고 영상에 들어갔고 그 때처럼 유튜브 댓글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홀리라는 유튜버가 매우 공격적이고 정말 사람을 정신병원 내원으로 직행하게 만드는 말투로 욕을 먹고 있었다. 정말 장황한 이유들이 논문의 서론처럼 두서없이 쓰여져 있었지만 내 눈에는 '5kg밖에 못 뺐는데 다이어트 성공한 척해서'로 밖에 정리되지 않았다. ..그게 잘못인가? 피티선생님의 톡에 답장을 좀 안하고, 목표한 몸무게, 혹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엄청난 결과 반전의 몸무게를 달성하지 못했고,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로 인해 그가 욕을 먹고 있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뒷광고'논란 또한 나는 유튜버 개인의 윤리적 잘못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던 유튜브 상의 법령과 "그냥 이렇게 해도 되나보다" 정도의 안일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욕하는 사람들은 그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했다. 무슨 태도를 말하는지는 알겠지만, 배우 김유정이 짝다리를 잠시 짚었다고 욕하던 사람들이 죽지도 않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물론 2021년에 유튜버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과 낼 수 있는 수익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연반인도 아닌 일반인의 영역에 있고, 그들에게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묻기에는 아직 국가가 따라오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고 본다. 그리고..비윤리적이긴 매우 비윤리적이나 문제 삼아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 남성 유튜버들이 너무나도 많이 떠오른다. 


사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묵인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날씬하지 않은 여성"이어서" 먹는 욕이었다. 어쩌면 나 또한 외모 강박에 시달려온 사람으로서, 화장품을 (양심상 거의..라고 하겠다) 사지 않았던 2019~2020년에도 홀리의 유튜브 채널만큼은 꾸준히 시청하며 약간의 응원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사근사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장사 잘하고, 홍보 잘하고, 잘 먹고 먹을 줄 아는 여자가 보기에 좋았다. 


오늘 회사에 가기 전 트렌드 조사할 겸 또 유튜브를 보다가, 홀리의 복귀 영상을 보게 되었고 또 수많은 욕먹는 댓글을 보게 되었다. 실제로 어떤 핫이슈 동영상에는 "솔직히 5kg 빼고 바디프로필 찍는 사람이 어딨냐 ㅋㅋㅋ"라는 아주 노골적인 혐오와 한국인의 가장 저열한 민족성까지 보여주는 댓글도 1천개의 좋아요를 받고 있었다. 남동생 레깅스 사업을 같이 홍보해준 일 (이게 왜..?) 공황장애가 왔다고 말했던 기간 동안 제주도 여행을 갔다온 일 등 사과를 왜 해야하나 싶은 일들이 그가 사과를 해야할 이유였다. 컨텐츠가 실망이었으면 컨텐츠가 실망이라고 하면 되지 그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할 일은 아니다. 재미없는 프로그램이나 도전에 실패한 도전예능에 사과를 요구한다니 철저히 감정적으로 자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사과해라하는 소위 일진 마인드다. 


누구 바디프로필 행동강령 보신 분..? 침까지 뱉어서 있는 수분도 다 빼서 찍어야 한다는 법 보신 분? 


홀리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가장 저열한 인식인 "쟤는 외양이 저러니까 욕먹어도 돼"서 욕 먹은 것 뿐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적인 척, 대법관인 척을 그만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브런치에서나마 그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비록 개인적인 신념상 뷰티 유튜버라는 직업 자체의 번성을 응원하진 않지만, 그가 정말로 잘못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해서 욕 먹은 사람이 있다. 

아이린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이린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직업 현장에서 갑질을 당했다면, 갑질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중으로서 연예인 아이린이 내가 그를 잘못했다고 판단할 만한 잘못을 했다고 보진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린의 갑질사건은 연예계와 그와 관련된 업계에서 회자될 잘못이지 대중의 판결을 받고 그 앞에 자필 사과문을 내놓을 잘못은 아닌 것 같다. 백번 양보하여 말하자면 '그정도의' 욕을 먹을 사건은 아니었다. 그냥 "실망이네요" "프로답지 못했네요" 정도의 비판은 받을 수 있다 치지만 그렇게 천하의 못되어 먹은 년으로 욕먹을 일이었을까..? 


더욱 솔직해지자면 나는 10~15년 전 정말 순도 100%의 질투로 "예뻐서 재수없"는 여자 연예인을 욕하던 네이트판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다. 다만 시대풍조가 바뀌어 더욱 고상하면서도 악랄한 방법으로 욕을 먹인다. 정말 그가 연예계에서 방출되어야만 할 것 같은 이유들을 들먹이며 욕한다. 사실상 범죄를 저지른 남자연예인들을 그렇게 끈질긴 수법으로 욕을 먹였다면 그 사람들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 같다. 갑질 기업들도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예뻐보이던 얼굴이 왜 이제 보니 못돼보이냐"는 말에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의 삶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자기 누구보다도 애국자로 변신한 사람들에 의해 욕 먹은 여자 연예인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겠지만 광복절에 쓴 인스타그램 필터로 욕먹은 티파니가 있고, 자국의 문화를 따랐다가 욕을 오지게 먹은 사나도 있다. 워낙 여자 아이돌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티파니라는 멤버를 좋아하던 나는, 공교롭게도 그 두명이 외국인이고 데뷔 초기엔 눈웃음, 애교 등의 키워드로 남초의 지지를 받았던 멤버인 것도 알고 있다. 좋을 때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할 때의 숙련도를 가지고 "아기같은 미숙함"으로 치환하여 좋아라하면서, 욕먹을 때는 그렇게 외국인에게 잔인할 수가 없다. 이 사건도 백번 양보하여 그들이 식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실수했다고 쳐도, 한국에서 나가라 할 정도로 욕을 먹을 일이었을까? 


나는 여성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20대 여자이지만, 사실 여성 연예인에게 여성주의적 행보나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에서 가장 중대한 이슈인 "보여지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기에, 백래쉬를 불고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편에 속한다. (그들의 여성주의적 행보가 의미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항상 지지를 보내는 편이다) 강남역 한복판에 "예쁘면 DA야!"가 붙어있지만 않았어도 좀 더 단순한 마음으로 걸파워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우리나라는 보여지는 게 미친듯이 중요한 나라여서, 연예인이란 직업의 영향력을 너무 잘 알면서도, 직업의 한계를 체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쓸데없는 이유로,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욕을 먹진 않았으면 좋겠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이야말로 처벌을 받고, 잘못을 했다면 비판을 받고, 실수를 했다면 반성하여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욕을 세차게 먹였던 여자 연예인을 세상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더욱 심하게 방 안에서 욕 올림픽을 올리고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시절엔 여자가 전형적으로 예쁜 여자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도 참 힘든 일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 교보문고라는 신문물이 들어오고 첫 팬싸인회를 소녀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반친구들이 같이 계란을 던지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놀라울 것이 없던 무개념의 시절이었다. 티파니의 당당한 모습과 프로페셔널한 모습,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같은 창법, 무대 위의 표현방식을 심각하게 좋아하던 나도 친구들의 풍조에 이끌려 소녀시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티 팬이라도 된 마냥 생각하곤 했다. 사실 집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수차례 돌려볼만큼 소녀시대가 너무 좋았고 SM엔터테인먼트가 알려준 그들의 미의 기준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그들처럼 되고 싶었던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소녀시대가 데뷔하던 시절 2007년은 여성에 대한 순수한 혐오로 어떠한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저 마르고 예쁜 9명의 어린 여자가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외모는 조각내져서 까이고, 인격모독에 별별 욕은 다 먹었다. 아이돌팬들은 다 아는 텐미닛 사건과 같은 여성들이 자행한 여성혐오 사건들도 떠오른다. 나는 그에 대한 반성을 뼈저리게 한 세대여서 그런지, 여자 연예인 덕질을 할 땐 그들의 직업적, 경제적 성공을 더욱 바랬던 것 같다. 

내가 보통의 여자 연예인이라고 떠올렸을 때의 나이가 된 2021년에도 그 광기는 여전한 것 같다. 다행히 여덕이라던가, 여자가 순수하게 여자를 응원하는 일은 매우 당연한 일이 되었고 "너 레즈야?"란 말을 듣지 않으며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한 켠에서는 더욱 고도의 방법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는 입바른 형태로 여성을 죽이고 있다. 

Chelsea Collins - 07 Britney (Official Music Video) 중 한 장면, 미쳐가던 07년도의 브리트니는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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