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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하 Feb 10. 2021

서울강박증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말하는 상경?기, 철저히 수도권 중심의.

나는 서울 강박증이 있다. 나는 서울에 산지 햇수로 9년이 되었지만 서울에서 벗어나면 이 세상이 나만 빼고 흘러가는 것 같고, 내가 곧바로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2시간 정도만 서울에서 벗어나 있어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 강박증은 2009년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당시 나는 6학년이었고 예중입시로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미술학원의 본점이 서울이었다. 당시 나는 소위 빡센 학원이 인생 처음이라 학원 선생님들의 언어가 매우 강력하게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자유롭게 자랐고,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의 교육열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원 갯수를 다녔기 때문에 한마디로 학원 교육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여느 입시 교육이 그렇듯 약간의 죄책감, 열등감 그리고 비교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듣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소위 서울 아이들과의 비교였다. 꼬질꼬질한 분당(...이쯤에서 많은 분들이 분당이면 거의 서울아니야?하실 것 같다) 아이들.. 너희 그림은 촌스럽다. 대략적으로 이런 식의 가스라이팅이었다. 가스라이팅도 아닌 게 당시에는 당연히 선생님의 말이 진리였기 때문에 그 말은 곧바로 내게 체화되었다. 나는 꼬질꼬질한 아이고 내 그림은 촌스럽다. 

가끔 빨간 버스를 타고 갔던 서울은 정말 정이 들지 않는 도시였다. 안 좋은 일을 당할 것만 같고, 춥고, 더럽고, 화장실은 비위 상하고 삭막하고 딱히 예쁘지도 않았다. 빨간 광역버스에 달린 학 커튼에 이마를 대면 알 수 없는 더러운 안정감이 찾아오긴했다. 한번은 목동에서 연합시험을 보고 아빠와 불고기 브라더스에서 불고기를 먹고 목동 야구장을 지나가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당시 나는 야구를 좋아했는데 티비에서 벌어지는 야구현장을 지나가는 게 야구를 좋아하고나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한국의 시간은 서울에서만 흘러가는구나. 


그렇게 죄책감 열등감 비교질의 효과적인 3연타를 맞은 나는 2010년 예중에 합격했고 서울로 통학을 하게 되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매개로 도시와 베드타운을 오가면 기분이 묘해진다. 분당은 정말 발전한 계획 신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평균적인 거주환경은 훨씬 좋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내가 사는 곳은 별다른 사건도 없이 멈춰있고 서울의 시간은 지나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서울 아이들은 더 잘났다라는 것을 전제로 그렇게 3년을 통학했다. 다행히 서울 아이들도 지능적으로는 다 비슷하단 생각은 하게 되었지만 묘하게 서울 사람들만 아는 생활방식, 지명(대표적으로 어디살아? @@동 이 있다), 서울에 대한 익숙함 등이 이젠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번 학교에 오래 남아 있다가 집에 갈려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 서울에 갇힌 적이 있다. 당시 엄마카드 출금하는 법, 아무한테나 돈 빌리는 법 등 별 방법을 다 생각해보다가 문득 걸어간다는 선택지가 떠올랐는데 경부고속도로를 떠올리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후로 그냥 살기 위해서 서울 지리를 좀 더 면밀하게 보기 시작했다. 어디 쯤에 어느 동이 있고, 어디에서 어디까지 얼마 정도 걸리고 파워팰리스에는 스타슈퍼가 있고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런 류의 정보들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 안에서 지역 간의 격차가 꽤 크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분당까지 서울로 아는 친구도 있었고, 노량진이 서울이냐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당시 했던 소소한 생각들은.. 

-계원예고 뮤지컬을 보러갔는데 <빨래>라는 작품을 보게되었다. <서울살이 몇핸가요>라는 넘버가 나에게 준 영향도 있다. 서울이란 저런 곳이면서 청담동같은 곳도 있구나를 알게되었다. 

-당시 천안함 피격 사태 등으로 청와대나 서울시청에 뭐가 떨어지면 난 죽겠구나 하고 빨리 분당으로 가고 싶었던 적도 있다. 

-월드컵 응원때문에 등교가 늦어지고 고속도로 사고(라디오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로 지각을 할 뻔 한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어쩌다보니 2013년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에게는 꽤나 갑작스러웠는데 서울 중에서도 홈타운스러운 서울이 아닌, 트렌드가 시작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도심 한복판으로 이동했다. 갓 개통한 신분당선은 이제 일상이 아니게 되었고, 서울이란 베이스에서 생활하고 사람을 만나고 하다보니 정말 생활이 달라졌다. 여기서부터는 '서울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 지하철도 이젠 너무 익숙해졌는데,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고등학교 3년 동안 내가 발견한 점은 이러하다. 


1. 서울 사람들은 싸구려 음식을 좋아한다. 

ex) 신사시장 떡볶이, 반포 애플하우스, 강북 시장에서 파는 국수 등 

: 서울 사람들의 맛집이란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분당, 일산 학부모들이 먹었으면 절대 아이들을 먹이지 않았을 법한 것들이 몇십년 전통의 맛집이고 여전히 "이 맛이지~"라며 좋아한다. 신사시장 떡볶이를 저격하는 것이 아니라, 맛의 결이 불량식품의 결이란 뜻이다. 나는 이걸 서울입맛, 서울맛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제일 입맛이 싼 곳은 강남이다. 강남이야말로 고급입맛과 극도의 싸구려 서울입맛만이 존재하는 빈부격차의 지역이었다. 


2. 기본적으로 그들은 기분이 나쁘다. 

중의적인 표현이다. 기분 나쁘게 행동하고 실제로 기분도 나쁘다. 기뻐보이면 술에 취했거나 미쳤다. 대표적으로 2호선에서 발견할 수 있다. 


3. 불변의 진리. 모든 것을 서울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 지역에 살면 그 지역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서울은 서울이다 보니까 그 사고가 좀 더 극심하다. 


4. 서울사람의 세련됨은 허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허상이다. 당연히 3대 백화점의 접근성은 훨씬 좋고 갤러리아 본점에 명품 수량이 들어올 순 있겠지만, 핀터레스트 이미지가 차라리 더 세련된 것 같다.


서울, 그것도 매우 도심에서 3년 반 가량을 살았고 나는 17~20살을 보내며 한껏 낭만적인 감상에 빠져 살았다.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일들, 서울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들..(예를 들면 스타를 마주쳐서 덕계못을 깬다던가 하는 17살 '나'의 상상들) 이제 사는 곳도 서울이니 더 이상 서울에 사는 것, 서울 사람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그 당시에 여행을 가면 불안해지는 습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내가 사는 곳(시간이 흘러가는 곳)에서 한 시도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쉬더라도 서울에서, 어차피 서울에 제일 좋은 것들이 있으니까' 이런 마인드가 박히게 된 시점이었다. 더불어 내가 서울을 다니는 마음이 더 편해진 것도 있겠지만, 서울이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보다는 좀 더 깨끗해지고 예뻐졌다. 그리고 분당 네이버 그린팩토리가 제대로 기능을 하게 되고, 내가 살았을 때는 텅 비었던 판교가 IT스타트업과 잘사는 젊은 부부의 성지가 되면서 서울의 시간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범위가 당연히 분당 정도의 거리로만 넓어진 것은 아니었고, 서울의 시간이 닿게 된 곳으로 제2동탄과 파주, 기흥, 하남, 광교, 김포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서울에서 사는 내 뇌에서 나온 느낌적인 느낌이다. 가깝고도 먼 광역버스의 느낌을 알기 때문에 여전히 서울의 시간이 제대로 닿는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으로 대표되는 백화점 속 서울 커플들의 도상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현대백화점은 돈이 많아보이는 30대 커플을 많이 봤는데, 남자분은 매우 대충 입으셨지만 가디건은 톰브라운인 경우가 많고 가방이 대체로 없다. 여자 분은 완벽한 펌이 된 헤어에 주로 아름다운 롱스커트같은 것을 입으셨다. 강남점(센트럴)로 대표되는 신세계백화점은 카오스 그자체이지만 그만큼 더 화려하고 다양하며 전형적인 군상의 커플들이 있었다. 가방이 있는 남자분들도 많다. 특히 약 2015년? 이후에는 더욱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서 특정이 어렵게 되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후엔 대학을 마포구로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좀 더 사람이 살 법한 동네에 살며 마포구로 통학을 해본 결과, 하이클래스로 강남 (한남동, 성수동은 여전히 핫하기 때문에 '부촌'까지는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이 대표라면 마포구는.. 중구보다 서울의 중심이다. 서울의 '느낌'을 한지역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강남역도, 광화문도 아닌 '건대입구'를 꼽고싶은데, 그건 너무 현실적인 서울이다. 느낌적인 서울은 소위 "홍입"이라 부르는 홍대입구다. 그리고 


마포구는.. 서울 그 자체다


내가 대학에 다닐 시절 (16~20년도) 해외에서 관광온 젊은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다들 1순위로 Hongdae를 와보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홍대는 정말 서울의 매력을 다 때려박은 지역이다. 

싸고, 더럽고, 예쁜데 쓸데없고, 좁아터졌고, 혼잡하고 짜증나지만 결국 오게 되는 매력. 

거주는 평화로운 곳에서 하면서, 학교를 홍대로 다니니 4년이 그냥 지내도 매우 다이나믹했다. 나는 여전히 서울 대중교통을 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태생이 공주님이라, 4년 내내 승모근의 긴장감이 풀리지를 않았다. 막학기가 되어서야 서울 대중교통도 편해지고, 홍대란 지역 자체를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마지막까지 서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그리워하던 홍대를 가면 1분만에 기분이 나빠지긴 한다. 



아무튼.. 그렇게 취업을 하고 이제는 꿈에 그리던 직장인의 서울로 통근을 하게 되었다. 을지로, 여의도, 상암, 테헤란로 등 뭔가 '본사'들이 많이 위치한, 그동안과는 또 다른 서울이다. 이 서울에 대해서는 여전히 탐구 중이긴 하나, 나도 이제 @@동, @@역이라고 말하는 게 입에 배어버린 "서울사람 다 됐네"의 서울사람이라, 어릴 때만큼 총기있는 눈으로 서울을 바라볼 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동이라고 말하는 게 왜 적합한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서울의 통계는 몰라도 사람들의 언어는 절대 서초구, 종로구, 금천구로 나위어져 있진 않은 듯하다) 고통의 정거장인 순천향대병원 정거장, 남대문세무서-백병원 정거장에서 타던 빨간버스는 이제 나와 먼 얘기가 된지도 벌써 8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울은 더럽긴 하지만, 극도로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또 안전하지 않다. 서울은 욕하면서 탐구하긴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긴 하지만, 내가 이토록 애써서 적응해야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어서 이 지방-서울간의 격차가 완화되길 바랄 뿐이다. 나는 판데믹을 겪으며 집에만 있을 수 있어서 심적으로는 더 편안해졌던 사람이지만, 수도권 특유의 자문화중심주의같은 경향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우동 있어요?를 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10년에 인스타스토리가 있었고 내가 트위터를 했다면 조금 더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중요한 건 스토리보다 이 좁디 좁은 땅 덩어리에서 수도에만 모든 게 집중된 이 사태이다. 워낙 작은 땅이라 개선이 될까 싶지만 나와 같은 서울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균형을 꿈꿔본다. 어느 지역에 가도 양주의 장욱진 미술관처럼 멋진 건물에 멋진 전시가 있는 그런.. 고도의 균형 말이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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