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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03. 2021

'일정 채우는 관성' 없애기

허전해진 달력이 어색해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바깥순이의 집콕 적응기.

3. '일정 채우관성' 없애





핸드폰을 켜고 캘린더 어플을 열면 항상 빼곡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으레 "너 만나려면 한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잖아"하고 웃었다. 특별히 내가 인싸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항상 사람을 만나면서 비어있는 시간을 채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퇴근 후 무언가를 배우러 가거나, 운동을 하러 가기도 했고, 혼자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저 나는 마치 습관처럼 달력을 빼곡히 채우는 행위를 지속했고, 그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캘린더가 비어있으면 급약속이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하다못해 미용실 예약이나 네일샵 예약이라도. 내 타임라인에 공백이 생기는 걸 용서치 않았던 나는 그렇게 뭔가를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면서 느끼는, 피곤함을 이겨내는 뿌듯함을 즐겼다.


특히 내일배움카드는 아주 제대로 쏠쏠히 사용해먹었다. 소득도 나이도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나는 좀처럼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원정책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정말 고소득자라서 지원을 못 받는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거다. 나는 항상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 조건을 넘겼고, 나는 이 애매한 기준이 역차별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그런 내게도 적용되었던 것이 바로 내일배움카드였다. 덕분에 배운 플라워도, 베이킹도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밀집된 공간에서 여럿이 모여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출퇴근도 두려운 마당에 학원이라니. 행여나 슈퍼 전파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한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행 모임 활동 역시 내 달력을 채워주는 주된 동력이었다. 20대때부터 함께 했던 모임이니 벌써 꽤 오랜 기간을 함께 한 인연이다. 이 모임만은 남자친구가 생겨도, 일이 바빠져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유지해왔다. 이제는 단순히 탈퇴하면 끝날 인연이 아니기에 단순히 모임친구들이라고 칭하기엔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잔뜩 모여있어 이 모임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배웠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직업, 다른 성격, 다른 취향,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은 때로는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즐겁고 유쾌하다. 기본적으로 여행 모임이기에 매달 정기여행을 기획하고 있고, 그 외에도 당일치기 나들이를 가거나, 맛집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보드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어울리고 있지만, 당연히 이 활동 역시 코로나로 인해 막혔다.


또 하나의 비극은, 당시 내가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필 그때의 남자친구는 당시 최고로 핫했던 대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대구에 살고 있다는 것 만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시기였다. 안 그래도 주말에만 만날 수 있어 데이트에 목말랐던 우리였지만, 대구 신천지 사건이 조금 사그라들기까지 약 한달 반 동안 아예 만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대구 산다던 남자친구는 괜찮냐는 걱정 섞인 질문을 종종 했고, 나는 나 남자친구 있었나? 따위의 말을 농담이라며 던지곤 했다.


모임 활동이나 데이트 등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는 일만 불가능해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관도, 도서관도, 카페도, 그동안 혼자서 여유를 즐기던 모든 공간이 두려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내가 괜히 바깥을 돌다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무서웠다. 특히 엄마아빠의 나이를 생각하면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고, 작년에 결혼할 예정이었던(결국 연기했다) 여동생을 생각해도 피해를 끼칠까 걱정스러웠다. 2020년 3월에서 4월, 내 인생에 이렇게 밖에 안 나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바깥 활동이 줄어들었다. 달력 어플도 전에 없이 깨끗했다.


지금은 하나 둘 밀리고 밀린 일정들이 부활해가고 있다. 언제까지나 코로나 괜찮아지면 보자/하자, 는 말로만 떼울 수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나는 집콕의 즐거움에 눈을 떠 버렸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2020년 4월 무렵에 시작된 수요취미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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