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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04. 2021

수요취미회 01. 미니어처 만들기

미니어처는 내 길이 아닌걸로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바깥순이의 집콕 적응기.

4. 수요취미회 01. 미니어처 만들기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되어버린 관계로 좀이 쑤신 건 당연히 나 뿐만이 아니었따. 끼리끼리 논다고, 바깥순이인 나의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바깥순이가 많았다. 나를 비롯한 여러 바깥순이들은 어떻게 집콕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어디 카페에 가고 싶네, 어디 여행을 가고 싶네, 아쉬운 소리를 하며 골골거리던 우리는 일단 그럼 조용히 집에서라도 만나서 이 답답함을 해소해보자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 넷이 모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유일하게 혼자 살고 있는 친구가 한명 있어 그 친구의 집으로 처음 모인 것이 아마도 4월의 어느 수요일. (왜 그동안 이 친구의 집에서 놀지 않았는지 새삼 의아해질 정도로 가까웠다.) 우리는 그동안 여행 계획 짜던 짬밥(?)으로 이미 집콕 계획도 다 짜놓았다. 사전에 각자의 취향에 맞는 미니어처를 하나씩 구매하여 지참했고, 배달시킬 음식도 미리 정해 모이기 한시간 전에 주문해둔 터였다.


일단 간만에 모이니까 할 말이 많았다. 이 사태에 대한 놀라움과 어이없음을 호들갑스럽게 토해내며 근황을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 이러다가 미니어처는 꺼내보지도 않고 돌아가겠다며 분위기를 정돈했다. 그러는 새에 배달음식이 오는 바람에 미니어처는 다시 한번 밀려나고 말았다. 떡볶이랑 치킨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보니 아 이거지, 이게 그리웠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회사와 집만 반복한 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오래 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깨끗하게 사라진 배달음식을 치워두고 우리는 모인 지 약 한시간 반만에 겨우 미니어처 박스를 뜯었다. 호두알 안에 토끼집이 앙증맞게 꾸며져있는 형태의 아주 귀여운 미니어처였다. 시작 전에는 귀여워보였다. 다들 미니어처 조립은 처음이라고 은근 설레했는데, 금세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았다. 미니어처는 정말 '미니'했고, 우리의 손은 소인국에 침입한 걸리버의 손인 것처럼 '거대'했다. 아무리 미니어처라지만 이 정도로 작다니. '미니' 정도로는 표현이 안된다. 미니미니미니어처 정도로 적어줘야 오해가 없다, 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핀셋이 같이 동봉되어 있었지만 핀셋으로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위로 자를 의욕조차 잃게 만드는 말도 안되게 작은 재료들을 보며 다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우리는 부들부들 떨며 핀셋으로 스티커나 아주 자그마한 알갱이 따위를 붙였고, 방금 전까지 띄고있던 미소를 거두고 금세 조용해졌다. 친구 한 명이 '근데 이거 누가 하자고 했냐' 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였던 것 같다.



완성은 했다. 거의 오기로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가끔 너무 작아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것들이 있으면 은근슬쩍 패스해가며 만들었더니 어떻게 완성이 되기는 되었다. 다같이 모아놓고 완성작 사진을 찍고나니 다시금 생기가 돌았다. 상당히 집중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다들 동네 사람들이라 다행이었다.



꽤 고생해서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날의 모임이 좋았던 모양이다. 헤어지면서 다음주도 수요일에 보자는 이야기가 오고갔고, 그럼 다음주에는 뭘 할지 검색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우리는 약 두달 가까이 은밀한 수요취미회를 이어가며, '의미있는 집순이 되기'에 시동을 걸었다.



미니어처 만들기 팁 아닌 팁

생각 이상으로 섬세한 작업이니(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직접 붙여야한다고 보면 된다) 만만하게 보지 말 것.

디테일에 집착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작업할 것. 본드범벅 주의.

처음에 작은 것부터 도전해보고 괜찮다싶으면 좀 더 크고 복잡한 미니어처에 도전해볼 것.

좀 더 덜 섬세하면서 비슷한 정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대체재로 레고도 괜찮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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