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니어처에서 의외로 고전을 겪은 여파로, 다음 수요취미회의 난이도를 대폭 하향 조절했다. 이번에 준비한 것은 스티커 붙이기였다. 친구 한명이 단톡방을 통해 스티커 붙이기의 도안을 공유하며 어떤 게 마음에 드는지 물었고, 또 나름 키덜트력을 뽐내는 우리는 디즈니 공주들이 그려진 도안 2종의 상세 페이지를 찬찬히 보며 깊이 고민했다. 신중한 선택 끝에 고른 스티커북을 주문한 후 또 다시 친구 집으로 모였다.
이번에는 추억의 디델리 라볶이와 참치김밥이 함께 했다. 대학생 때 즐겨먹던 디델리 라볶이, 가끔 생각나서 먹곤 했는데 이번에도 오랜만에 먹으니 순삭은 일도 아니었다.
5장의 도안은 각각 백설공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앨리스였다. 미녀와 야수는 누가 봐도 가장 예쁜 도안이었다. 대신 가장 난이도는 높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도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한 정도였고, 지난번 미니어처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간단한 작업이었기에 은근 모두 탐냈다. 쉬워보이면서도 예쁜 앨리스는 역시 내심 노리는 대상이었다. 완성본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는 인기가 없었고, 백설공주는 중간은 가는 정도였다. 비장하게 이어진 가위바위보 결과에 따라 각각 도안을 선택했다. 나는 적당히 무난한 백설공주 도안을 얻었다.
인어공주 도안을 앞에 둔 친구는 시작부터 의욕이 없었다. 그럴만했다. 왜인지 인어공주 도안만은, 주인공이 인어공주가 아니라 마녀였으니까. (인어공주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마녀 그림에 스티커를 붙여야했다.) 우리는 다 자랐지만 여전히 마녀보다는 공주를 좋아한다. 친구는 후딱후딱 섬세하지 않게 스티커를 붙여버리고 일찌감치 쉬었다.
나는 꼼꼼하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어떻게 해도 스티커와 스티커 사이에 틈이 생겼다. 이건 내가 섬세하게 붙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사이즈가 똑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다들 조금씩 벌어지는 스티커 사이의 간극을 보며 완성도를 못내 아쉬워했다. 좀 더 정확하고 딱 들어맞게 제품을 만들어달라!
미니어처를 한 3시간 붙들고 있던 것에 비해 스티커 붙이기는 30분 정도 만에 종료되었다. 사실 우리 나이에 할 놀이는 아니었다는 결론과 함께 완성본의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재밌었다며, 수요취미회 아니면 언제 이런거 해보겠냐며, 제법 괜찮은 경험을 한 듯 감상을 말하고는 우리는 또 다시 다음주를 기약했다.
스티커북 팁 아닌 팁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지는 모르나) 꼼꼼히 붙여도 스티커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20대 30대 어른이 하기에는 상당히 쉽고 간단하여 성취감은 살짝 떨어질 수 있지만 단순 작업으로 귀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면 해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