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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13. 2021

집콕으로 인해 얻은 것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바깥순이의 집콕 적응기.

12. 집콕으로 인해 얻은 것





바깥순이임을 이 연재의 첫화부터 명백하게 밝히고 시작했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를 1년에 걸쳐 적응하며 이제 집에서 즐거움을 찾는 법을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큰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못할 말인 듯도 싶으나, 이 사태로 인해 얻은 것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족과의 시간

그 전에는 하도 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바람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엄마아빠는 내가 퇴근하고 바로 집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 박수를 치며 나를 맞이했다. 아니 이렇게 일찍 들어오다니, 얼마만이냐. 그 뒤로도, 내가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가는 일과를 수행한 지 꽤 한참 지난 후에도 부모님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며 격하게 반응하셨다. 퇴근길 힘들지는 않았냐, 뭐 먹고 싶은건 없냐, 내일은 뭐 해줄까, 집에 일찍 오니 좋지 않니 등등의 반응이 있었고, 나는 그게 매우 머쓱하고 겸연쩍었다. 마치 어디 멀리 떠났다 돌아온 자식에 대한 반응같아서.


아빠는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가요무대를 보신다는 것을, 엄마는 저녁을 차린 후 치우자마자 다음날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것을, 아빠는 때때로 하루종일 채소만 먹는 날을 정한다는 것을, 엄마는 밤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빠의 막걸리픽은 오직 장수막걸리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무관심하고 못난 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나는 퇴근길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테이크아웃해서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고, 엄마아빠와의 대화시간도 많아졌다. 아빠는 나에게 이것저것 더더욱 질문이 많아졌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기 좋아했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집콕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모습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처음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무척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아깝디 아깝게 흘러가는 시간 같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좀 쉬자, 했던 것도 금세 지루해지고 말았다. 집순이도 타의에 의해 집에 있는 건 싫다고 하던데 나같은 바깥순이는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지루하게 누워있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이것저것 뒤죽박죽 꽂혀있는 책장이 문득 보기 싫어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별 게 다 나왔다. 예전에 썼던 자소서, 각종 대외활동 인증서, 전공 필기, 봉사활동할 때 썼던 리플렛, 만들어놓고 제대로 들여보지도 않았던 포토북, 한창 포토카드를 열심히 모아 꽂아놓던 앨범, 친구에게 받은 카드와 편지 등. 어차피 쓰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 싹 정리해야지 하고 두팔을 걷어붙였었는데, 하나하나 보다보니 막상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여전히 수북히 많은 것을 안고있는 책상과 책장이지만 그렇게 한번 추억을 돌아본 시간이 참 애틋했다. 세상을 어떻게 마냥 군더더기없게만 살아가리, 나는 그냥 내 본성대로 맥시멀리스트로 살련다.


어느날은 핸드폰과 외장하드의 사진들도 다시 보았다. 웃기고 벽차는 사진들도 많았고, 지웠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차마 지우지 못했던 사진들도 있었다. 또, 어느날은 대부분 한두달만에 쓰다말고 끝나는 일기도, 달력 어플도 들춰보았다.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의미없는 추억팔이처럼 보일 지 몰라도 이렇게 새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의외로 내게 도움이 되었다. 아, 내가 이때 이런걸 했고,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걸 남겼구나. 이 때 참 열심히 했구나. 이건 아직도 이루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노트를 펴서 이것저것 적기도 했다. 그때 하려고 했던 것 중 진짜 한 것, 아직 못한 것, 못한 것 중에 여전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등을 적었다.



책을 읽는 시간

그동안 바깥으로만 돌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 중 가장 아쉬웠던 게 바로 독서였다. 이 기회에 책이라도 좀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다 사서 읽자니 부담스러운데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도 모두 문을 닫았고, 역에 놓여져있던 스마트도서관도 운영이 중지되었다. 그러던 중 전자책이라는 편리한 매체를 떠올렸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그냥 폰만 들고다니면서 어디서든 편하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심지어 마음에 두는 구절을 저장해두는 기능까지 있다. 인상깊은 구절을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는 꽤 꾸준히 이어져 한달에 최소 3-5권 정도의 책을 읽는 패턴이 반년 넘게 지속되어 왔다. 소설책 위주로 읽은 달에는 7권까지도 읽었고, 직무 관련도서나 경제 관련 도서가 포함된 경우 좀 덜 읽기도 했다. 독서를 하니 좋은 글을 기억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다. 또 직접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도전하게 된 것이 브런치다. 한번 고배를 마시고 잠시 잊었는데 올초에 다른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재도전하여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분명히 더 있다. 내가 집콕을 하면서 얻은 것들이.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서 떠들고, 예쁘고 좋은 장소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고 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내 가족과 나 자신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큰 터닝포인트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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