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볼리비아·에콰도르·페루 등 고산지대 도시의 코로나19 확산 정도가 저지대 도시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에 첨부된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니 불현듯 그리움이 밀려와 구글 포토를 열었다. 언제쯤이더라, 쭉쭉 내리다보니 2018년 5월이었다. 그 도시에서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코로나도 피해간다는 도시
이성 간에도 찐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친구가 있다. 큰 키에 적당한 체격,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이어서 지켜봤는데 알고보니 허당이라는 단어로도 형용되지 않는 허술함으로 가득한 친구였다. 끝을 모르고 튀어나오는 그 친구의 허점은,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깊이 땅을 파고 내려가게 했지만 친구로서의 매력을 수직 상승케 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히려 가족이나 여자친구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질투나 한심한 실수까지도 곧잘 공유했고 정말로 다른 감정이 1도 섞이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같은 모임에서 만난 4명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말했다.
"남미나 가자"
마치 퇴근하고 족발에 쏘주나 먹자고 말하듯이.
그래서 갔다. 나는 구비서, 동갑내기 친구는 윤회장, 한 살 어린 여자 동생은 임사원, 한 살 어린 남자 동생은 탁인턴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연유를 알 수 없는 별명을 붙여 이름표까지 만들어서. 다들 직장인인 것 치고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7일이라는 휴가를 썼고, 주말을 2주간 붙여 총 10박 11일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미국까지 11시간, 미국에서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또 6시간을 날았다. 11일밖에 없는데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다들 애가 달았다. 미국을 경유하며 몸을 일으키니 온 몸 구석구석 근육들이 환호를 질렀고, 우리는 미국도 와본 셈이네 아니네를 가지고 낄낄거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리는 마침내 남미의 땅을 밟았다. 수도 리마에서 내렸지만 곧바로 환승을 하여 쿠스코로 넘어갔다. 쿠스코라니! 어릴 때 봤던 '쿠스코 쿠스코'라는 애니메이션 덕분인지 환상 속의 도시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리마에서는 별로 바깥 구경도 못하고 넘어왔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생각에 설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쿠스코의 첫인상은,
'미세하게 느껴지는 두통'이라는 통각으로 남았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페루는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고산병을 앓을 수 있다는 사실은 숙지하고 갔지만, 난생처음 남미에 발을 딛었다는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불청객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비교적 나는 두통이 약하게 온 편이었다. 키도 덩치도 가장 큰 윤회장은 가장 심하게 앓았고, 가장 작은 내가 비교적 멀쩡한 편이어서 페루의 고산병의 강도는 키에 비례한다는 이론까지 만들 뻔했다(다들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서로를 놀리고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는 공항에 놓여있는 잎을 허겁지겁 씹어먹었다. 이게 코카잎이군! 하며 이걸 알아본 스스로를 내심 대견해하며. 코카잎을 먹으면 고산병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듣고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는 하루가 바쁘게 도시를 이동해야 했다. 페루에서의 일정을 짜면서 우리나라가 정말 작은 국가라는 사실을 어찌나 많이 느꼈는지. 어디 한 곳에 가려면 기본 12시간 정도는 버스를 타야 했다. 당연히 비행기 이동 시간을 빼고 남은 9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윤회장이 입술이 퍼래질 정도로 심하게 고산병을 앓았지만 마냥 쉴 수 없었다. 특히 첫 날은 유심도 사야하고, 다음날에 떠날 마추픽추 투어도 예약해야 한다는 미룰 수 없는 미션이 있었다. 입술 퍼런 윤회장은 흐느적거리며 쿠스코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람의 입술이 자연적으로 퍼래지는 모습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윤회장을 놀리는 포인트다.
그럼에도 그냥 길만 걸어도 즐거웠던 첫 날이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여기가 외국이오를 온 몸으로 외치는 듯한 낯선 양식의 건물들 사이를 걷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노란 빛이 도는 잉카 콜라를 마시며, 광장에서 어린 알파카를 안고 다니면서 돈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게 해준다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계속 목을 빼고 돌아다닐 때 쯤에는 나는 두통에서 거의 해방되어 있었다. 윤회장은 여전히 흐느적거렸고, 계단만 올라가도 한칸한칸 호흡이 더 가빠진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첫날의 마지막 기억은 산 페드로 시장에서 사온 과일을 풀어놓은 것이었다. 사진은 찍었지만 어떻게 먹는지 몰라 선뜻 손을 대지 못했는데, 야물딱진 임사원이 어떻게든 부수고 깎아보았다. 슈퍼에서 산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숙소 로비에서 물을 찾던 나는 공항에서 본 것과 똑같은 코카잎을 발견했다.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은 윤회장에게 주려고 잎을 한 웅쿰 챙긴 나를 숙소 직원이 멈춰세웠다. 바디랭귀지로 전하는 설명을 알아들고 나는 폭소했다. 코카잎은 날 것으로 씹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에 우려먹는 것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공항에서의 우리는 얼마나 자연인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