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날짜를 보니 3월 30일. 딱 2주만에 접속을 했다. 사실 그동안 회사 일이 너무 바쁜 바람에 절로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멍때리는 나날이 이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올초부터 내내 바쁜 일과가 지속되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퇴근 후 일상을 의욕적으로 이어가던 나였는데, 근 2주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퇴근 후 열심히 다른 활동을 하는 나 스스로를 내심 대견하게 여기곤 했기에, 퇴근 후 무언가를 할 체력적 심리적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또 나를 울적하게 했다. 이는 야근비나 저녁 제공 등의 처우 없이 야근을 하게 하는 회사의 환경을 원망하게 하고 회사로 인해 내 생활 전반이 흔들린다는 많이 나아간 불만마저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바쁘다'는 것만이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아니었다. 이 한 단어에는 사실 '회사 내에 같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무언가를 꾸려갈 사람 하나 없이 그저 혼자 바쁘다'는 것과 '바쁜 업무로 인해 내 다른 일상을 잃어간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5인 미만으로 운영되는 규모가 작은 곳인데, 그렇다보니 정말 물리적으로 나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는 환경이었다. 대표님은 항상 외부에 있어 무엇을 하는 지 정확히 몰랐다. 물론 나름의 이유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느라 분투하셨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실무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으셨기에 늘어난 업무를 같이 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과장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분은 사실상 절반만 직원이었다. 육아를 병행하며 재택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데일리 업무만 처리하는 상황이었기에 빠르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발맞춰 업무를 같이 해줄 수 있는 직원은 아니었다. 그러면 남는 사람은 나 뿐이다.
타 회사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 회의를 한번 하고나면 일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그들은 그 회사 내에서 분담하여 일을 처리하겠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그 일을 처리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해야할 일에 대한 리스트를 하나하나 적다보면 화와 동시에 답답함, 부당함 등등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은 당연히 있었다. 나 스스로도 뿌듯함과 성취감을 크게 얻을 것이고 커리어에도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봐도 매일 점심밥을 컴퓨터 앞에서 대충 때우고 일을 해도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부정적인 마음이 우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지속되는 피로감에 지쳤고, 퇴근 후 일상이 사라지는 하루하루가 눈물나게 속상했다. 퇴근 후에 운동을 할 체력이 없는 것, 책을 읽을 기력이 생기지 않는 것, 이 좋은 날씨의 봄밤을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는 것 등등이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았고, 일에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그저 꾸역꾸역 울며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님과 여러 차례 면담했고, 업무를 분담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구구절절 전달했다. 직원을 새로 뽑아줄 여력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비록 대표지만 어느 정도는 업무를 분담해줄 것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님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건 현재의 상황과 아주 동떨어진 조언이었기에 오히려 상황을 하나도 모르고 계신다는 실망감만 남겼다. 동시에 약간의 일을 가져가주셨다. 마음 같아서는 그 이상으로 요청하고 싶었지만 최소한으로만 넘겼다. 하지만 결과물을 받기로 한 날, 주말 중에 처리해보겠다는 말만 남기며 아무것도 주지 않는 모습에 1차로 크게 실망했고, 그 다음주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모습에 더더욱 실망했다.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를 것 같았지만 이미 내 몫의 업무는 차고 넘치게 많았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 업무에 대한 결과를 받은 것은 내가 요청했던 날짜보다 족히 일주일은 더 지난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끝의 끝의 어느날이었고, 지연에 대한 사과도 내 몫이었다.
사직서를 냈다. 단순히 지금 일이 바쁘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누적된 실망감과 회사의 비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결과였다. 또한, 퇴사의 이유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의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 결과였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일에서 보람을 얻고, 근로소득을 얻고, 좋은 동료를 만나 일과 마음을 나누고, 회사의 성장에 기여해 나의 처우를 개선시키는 보상을 얻고, 또 이를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활동을 하기 위함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앞의 2개밖에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두번째 조건은 연차나 업무량에 비해 적은 편이니 1.5개 정도로 쳐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원치않는 덤으로 스트레스, 불만, 나빠지는 인성,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등도 더 얻을 수 있겠다.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현재의 회사를 다닐 이유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한때 직장인들에게 사이다같은 개념으로 다가왔던 워라밸에 대해서도 다시금 다양한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퇴근 후 일상에 굉장히 큰 비중을 부여하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기계적으로 정해진 근무시간만 채우고 그 이후는 나몰라라 한다는 의미의 정시퇴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약없이 혼자서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고, 이에 대해 아무런 보상이나 조치를 약속받지 못하는 채로 언제까지고 일을 해나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하기 싫다는 말을 종종하곤 하지만 항상 맡은 일을 책임감있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를 대표 혼자서는 꾸릴 수 있겠지만 직원 혼자 꾸릴 수는 없다. 이해한다고 도와준다고 말만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대표 아래 직원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음 직장은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곳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