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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emeetskun Feb 24. 2020

Julia & Us 2. 피칸 파이 타르트

Dough Talk . 타르트지 반죽 수련

<아내의 요리>

타르트 반죽과의 한 판 씨름을 끝내고 겨우 기록을 남길 기운을 차렸다.


디저트 중에서 타르트를 최고로 꼽는 남편은 요리책 목차에서 각종 타르트 레시피를 발견하고 잔뜩 기대한 눈치였다. 베이킹을 담당하기로 한 나로서는 난감했다. 타르트라는 것이 먹을 때는 달콤한 과일과 견과류, 부드러운 크림이나 초콜릿 필링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막상 직접 만들려고 보면 그 반짝이는 재료들을 견고하게 받쳐줄 타르트지를 잘 굽는 것이 관건일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연보다 까다로운 조연을 제대로 만들어내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내가 자신 있었으면 진작에 만들었지...' 약간 위축된 마음으로 타르트 레시피가 시작되는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던 중에 나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는 듯 찰떡같은 위안을 주는 구절을 만났다: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의역 주의) 타르트지 반죽이 당신의 요리인생에 있어 늘 두려움이었다면, 당신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파티시에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반죽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으며, 반죽 만들기의 첫걸음은 오늘 당신이 제대로 된 크러스트를 만드는 방법을 한 번 배워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줄리아 언니... 그 말씀은 정녕 진실이겠지요? 문득, 더 부담스러워하고 망설여봤자 인생 첫 타르트 탄생의 순간만 늦춰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결심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고난의 여정이 이어졌다.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이 정말 유용한 이유 중 하나는, 한 가지 레시피를 소화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 도구와 특정 재료가 없을 경우 대체할만한 다른 재료들을 함께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타르트지 반죽의 경우 1) 전기 믹서를 사용할 경우와 2) 푸드 프로세서를 사용할 경우를 나누어 설명되어 있다. 나는 푸드 프로세서를 써보기로 했다.   


[재료]

고체 재료: 밀가루 3.5컵, 버터 2.25 스틱, 밀가루 5 Tb (테이블스푼), 소금 2 tsp (티스푼), 설탕 1/4 tsp

액체 재료: 계란+얼음물 1컵

1. 푸드 프로세서에 고체 재료를 넣고 4-5번 껐다 켰다 하면서 재료가 섞일 수 있도록 한다.

2. 푸드 프로세서를 작동시킨 상태에서 액체 재료를 넣는다.


3. 푸드 프로세서를 여러 차례 껐다 켰다 하면서 재료들이 푸드프로세서의 칼날에 엉겨 붙을 때까지 섞어준다 (이때 재료들이 서로 잘 뭉치지 않는다면, 물을 아주 조금씩 넣어준다)

4. 재료들이 잘 뭉쳐져 한 덩어리가 되었다면 STOP! (주의: 평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면 반죽할 때만은 넣어둘 것. 적당히 대~충 뭉쳐졌을 때 멈춰야 한다)


5. 반죽을 도마 위에 올리고 손바닥으로 치대 준다 (반죽 마지막 단계)


6. 반죽을 랩으로 꽁꽁 싸매서 밀폐용기에 넣고 2시간 정도 냉장 보관한다 (집에 랩이 없어서 생략). 반죽은 냉장 보관 시 며칠, 냉동 보관 시에는 몇 달동 안이나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니 한 번에 넉넉히 만들어 두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두 번 시도해볼 정도의 양만 반죽했다.


반죽을 몇 시간이고 차가운 상태로 resting 하는 이유는 밀가루의 찰기를 담당하는 글루텐 성분을 억제하여 반죽이 쉽게 펼쳐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반죽에 넣은 버터가 단단해지면서 힘 있는 반죽을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다. 탄탄한 타르트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7. 도마에 밀가루를 살살 뿌리고 (반죽이 안 들러붙게) 차가워진 반죽을 꺼낸다.

8. 반죽의 높이가 0.3cm 정도 될 때까지 밀대로 쭉쭉 밀어준다 (밀대가 없으면 빈 와인병으로도 잘 밀린다).

 

9. 타르트 접시 위에 반죽을 척-걸친 다음 접시 모양에 맞게 가장자리를 잘라준다.

10. 이때쯤 오븐 예열을 시켜주면 타이밍이 적절하다. 오븐 예열 온도는 220C (425F).


이제 진짜 중요한 단계다. 필링을 넣기 전, 타르트지에 포크로 뽕뽕 구멍을 뚫어줘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단계를 깜빡하고 생략하는 바람에 파이지가 필링을 뚫고 올라와 흡사 화산 폭발을 목격하는 것 같았고, 이를 먼저 발견한 남편은 외마디 비명을 금치 못했다. 가슴 아프니까 화산 폭발 사진은 안 올려야지...

줄리아 차일드의 타르트지 레시피는 여기까지다. 어떤 타르트를 만들지는 나의 자유인데, 이왕이면 줄리아의 타르트 레시피에 도전하고 싶어 살펴보았지만 프렌치 아니랄까 봐 재료들이 복잡 복잡했다. 이미 타르트지 만들기에 진을 뺏기에 첫 타르트는 남편과 나의 취향을 반영한 (무엇보다 재료가 간단한) 피칸 파이 타르트로 정했다.

맛있는 피칸 파이의 특징은 겉에 있는 피칸은 카라멜라이즈 되어 달콤 바삭하고, 속은 쪼온득쫀득한 식감 정도인 것 같다. 말은 쉽다.


파이 필링 재료: 달걀 3개, 밀가루 1/2컵, 설탕 1컵, 무염버터 1/4컵, 바닐라 엑스트렉트 1.5 tsp, 잘게 썬 피칸 1.5컵, (생략 가능) 위에 장식할 피칸 30-40개


(클래식 피칸 파이 타르트 레시피에는 옥수수 시럽을 넣으라고 되어 있으나, 밀가루로 대신했다.)


1. 계란을 먼저 잘 풀어준 후 나머지 재료를 다 넣고 섞는다.

2. 타르트지에 필링을 붓는다 (원한다면 필링 위에 피칸으로 더 장식을 해줘도 좋다.)

3. 예열된 오븐에 넣고 50분 구워준다.


끝. 비록 오븐 안에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맛이었다. 갓 구워진 타르트를 한 조각씩 먹으면서 자축하고, 다음 날 남편 점심 도시락 메뉴에도 추가했다.

성격상 미완성의 찜찜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다음날 바로 남은 반죽으로 '폭발 없이 타르트지 굽기'에 도전했다. 실수를 통해 얻는 깨달음의 이면엔 '다시 실수를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남는다. 그래서 이번엔 커다란 타르트 접시가 아니라 작은 머핀 틀을 꺼냈다. 머핀 틀에 버터를 발라주고, 반죽을 올린 다음 포크로 구멍을 뽕뽕 뚫어주었다. 필링 없이 타르트지만 구운 터라 오븐에는 20분 정도 넣어두었다. 애초에 모양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못난이지만, 정말 타르트지에 구멍을 뚫었더니 얌전히 구워졌다. 이제 조금 알겠다.

따로 구운 타르트지에 꿀과 요구르트, 과일을 올리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핑거푸드가 된다. 설탕 듬뿍 들어간 타르트가 겁난다면 이렇게 상큼하고 건강한 레시피도 좋을 듯:)


최근 마음에 새긴 사자성어를 되뇌면서 두 번째 레시피 기록을 마치겠다.


자지자기 (自止自棄) : 제풀에 멈추면 성취가 없다.


아직 타르트 반죽과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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