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왕거미 생각

by 수경

두어 달 전에 내 차 안으로 왕거미 한 마리가 들어왔다. 도원도서관 근처 나무 그늘이 많이 진 주차장 부근의 숲이 자기 집이었을 것이다.



달리는 차의 전면 유리창을 스케이트 타듯 발 빠르게 움직이던 거미는 내가 지금껏 본 것 중에 가장 빠르고 가장 무시무시하고 징그럽게 생긴 것이었는데, 비 많이 내린 다음날과 바람 많이 분 그다음 날도 어디 가지 않고 내 차의 눈에 띄지 않는 안전한 곳에 붙어 있다 마침내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나 보다.



왕거미는 운전석 계기판을 미끄러지며 줄행랑치다 천정에서 안도하며 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종이 만 것으로 쳐내 먼 거리에서 기절하도록 두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왕거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거미는 곧바로 내 뺨을 스치며 운전석 쪽으로 달려들었고 닥치는 대로 휘젓고 소리 지른 덕에 왕거미는 브레이크 아래쪽에 낮게 포복하게 되었다.



왕거미는 나의 발 밑에서 죽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의 몸집이 너무 컸고 신발 아래 가해진 힘 또한 거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었던가보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무섭게 생긴 거미가 내 뺨에 닿은 촉감은 가냘프고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본래 왕거미의 집이 있던 그 나무 아래 풀밭에 몸을 받아내려 놓았다. 예기치 않게 또 본의 아니게 적이 만들어지고 승패가 가려지기도 한다. 한동안 비 오는 날 자동차 문을 열 때마다 왕거미는 항상 내 생각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온종일 비 내리는데, 차 문을 열고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왕거미 생각이 났다. 서서히 그렇게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비 맞지 않는 포근한 아랫목에서 비를 피하며 한 잠 멋진 꿈을 꾸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비 오는 날은 왕거미 생각이 난다.


#왕거미 #비


픽사베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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