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가는 길. 원제 Paris Can Wait. 파리는 기다려준다. 앤은 기다려준다. 2017년 작.
가창력 있는 가수가 클라이맥스와 고음이 없는 소품 같은 노래를 분위기를 살려 부를 때, 노래의 진가와 진면목이 드러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듯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가벼운 로드 무비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사실 중요한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과의 관계 짓기, 그리고 삶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선택의 문제 등등...
여주인공 앤은 신기할 정도로 사려가 깊고 배려심 있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다. 앤은 우연히 남편의 동료인 프랑스 남자 자크와 파리로 가는 하루를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면 충분히 도착하게 되는 파리행이 이틀간에 걸쳐 이어지고 호텔에서의 식사, 풀밭에서의 오찬, 박물관 관람 등등 파리행이 대책 없이 지연된다. 이것을 걱정하는 앤에게 파리는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며 한껏 길 위에서의 여정을 즐기고 낭만과 멋을 부리는 자크.
도중에 자크의 자동차 팬벨트에 문제가 생기는 돌발 상황도 겪고, 이 와중에 낭만만 잔뜩 부리던 자크는 나 몰라라 식이다. 앤은 유튜브에서 본 대로 스타킹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또 저녁 레스토랑에서 자크의 난감한 질문 세례, 남편에 관한 험담 등 불쾌한 일을 겪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밝은 표정으로 불쾌를 다 씻어내는 앤.
앤의 캐릭터가 궁금하다. 저런 캐릭터의 여자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자크 같은 캐릭터는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듯(?)한데, 아닌가?
앤은 심장병으로 39일 동안만 살다 간 자신의 아이 데이비드의 목걸이를 항상 목에 걸고 있다. 그때의 충격으로 전남편마저 앤의 곁을 떠났고. 그녀는 삶이 얼마나 연약한지, 삶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얼마나 멋진지 잊지 않으려고 데이비드의 목걸이를 하고 다닌단다. 나중에는 자크 또한 자신의 슬픔 하나를 고백한다.
앤은 예전의 아픔을 극복하였거나 극복하여 삶을 보석같이 가꾸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삶의 단편을 보며 일희일비하는 대신 삶 전체를 아울러 바라보는 여유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자크와의 멋진 동행이 가능했겠는가. 아니다. 자크 또한 투박하긴 하지만 앤을 위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였다. 어쩌면 상처와 아픔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성숙시킨다.
생 빅투아르 산과 가르수도교, 액상프로방스의 라벤더 밭, 베즐레 성당과 리옹 시장,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와 반짝반짝 발광하는 애펠탑과 수많은 프랑스 요리들은 모두 내게 소품처럼 여겨졌다. 내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훨씬 부각되는 영화였다.
그나저나 사려 깊고 현명한 앤이 자크의 프러포즈에 어떻게 답할지 정말 무지무지 궁금하다. 영화는 앤의 선택에까지 관여하지는 않는다. 과연 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참, 앤은 사진 찍기를 즐긴다. 앤의 방식은 원경을 담는 대신 미시적으로 사물을 포착한다. 아주 섬세하고 세심하게~ 자크는 그걸 읽어내는 눈을 가졌고.. 자크 또한 세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영화 #파리로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