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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 후 싹 끊은 음식 4가지

5년 차 재발 전이 없는 암 환자의 식습관

by 영끌치유

2025년 8월의 제주는 지난 여느 여름보다도 길고 힘들게 느껴졌다. 처서가 지난 오늘까지도 여름 더위는 식을 줄을 몰랐고, 매일 하던 수목원 오름과 이호 해수욕장의 맨발 걷기도 잠정중단해야 했을 정도로 제주의 올여름은 덥고도 혹독했다.


환자가 되고 나니 가장 몸이 힘든 시기는 계절이 바뀌는 때였는데, 쌀쌀한 가을에서 냉혹한 추위로 넘어가는 겨울과, 강열한 태양이 섬 전체를 뒤덮는 후끈한 여름 또한 내 몸은 넉다운이 되기 일쑤였다.


잠깐 산책이라도 하려고 나섰던 어젯밤의 시도는 현관을 나서자마자 비강으로 들어오는 습한 열대야의 공기에 좌절되고 말았다.


'아니, 처서에 웬 열대야야...?'


지구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제주는 보통 처서가 시작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섬이라 육지보다 여름이 길고 더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주는 생각보다 여름이 길지 않다. 찐 더위는 7월 말부터 시작해 8월 중순까지 화끈하게 덥다가 처서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해지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다르다. 8월 말에 이렇게 숨이 막히도록 덥다니, 진정 동남아의 날씨로 변해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렇든 저렇든 암환자인 나에게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인 동시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문득, 진단 후 지나온 계절들을 생각해 보니 어언 5년 차 생존을 지속하고 있었다. 3중 음성 유방암은 예후가 좋지 않아 재발이나 전이가 일어나면 생존확률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감사하게도 나는 재발, 전이 없이 5년이라는 시간을 생존해 왔다.


주변의 환우들이 대부분 재발되고 전이되는 이 전쟁터에서 나만 멀쩡(?)하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나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니 이 세계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곳인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생존의 비법은 간단할 것 같지만 간단하지 않고, 끝날 것 같지만 끝낼 수 없는 철저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의 관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목원 오름에 오르거나 이호 해수욕장의 바닷가에서 맨 발 걷기를 해왔는데, 이건 뭐 더워서 오름에 갔다가는 쓰러질 것만 같았고,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맨발을 맡겼다가는 발이 오징어 구이처럼 익을 것 같아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매일 누리던 자연과의 교감이 더위로 인해 불가했던 날들이 늘어갈수록 몸속에서

'이러다 죽겠군!' 하는 곡 소리가 들려왔다.


혈압은 측정기가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내려갔고, 더위로 늘어진 몸뚱이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도 산 송장처럼 기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힘을 내야 하는데, 혈압은 낮고, 머리는 핑 돌고, 입 맛 마저 없었다.


잘 먹지 못하니 기력이 없었고, 기력이 없으니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이 움직이지 못하니 극도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투병 중에 못 먹고, 못 하는 것들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죽음의 공포로 인한 우울감은 그 무엇보다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러다 무기력감과 우울증으로 죽겠군!'


'오늘은 그 간 수행하느라 고생한 내 몸뚱이에 약칠을 좀 해줘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 마트에 가서 지난 5년 간 쳐다도 안 본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수색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이스크림 할인 기간이어서 담으면 담을수록 가격이 인하되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나는 눈에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보이는 족족 보냉백에 주워 담았다. 어찌나 급했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이도 잊은 채 아이스크림 콘을 까서 한 입 베어 물고는 마치 단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처럼 행복감을 느꼈다.


'이 맛있는 걸 지난 5년 간 먹지 않았다니... 독한 년.'


진단 후 4년 간은 단 거, 기름진 거, 찬 거, 소화가 어려운 것들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풀어서 말하자면 설탕, 기름, 아이스크림, 밀가루는 기피음식 1호들이었다. 좀 더 추가하자면 커피와 우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당연히 좋아하던 와인은 기피 음식 0순위로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 몸은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진단 후 5년 차가 되니 길고 지루한 수행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면서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가?'


그래서 최근엔 험난한 수행의 투병생활로부터의 일탈을 하나씩 시도했다. 긴긴 투병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나의 도파민을 자극시켜 줄 만한 무언가는 하나정도 있어야 했다. 급하게 까먹는 길거리 아이스크림처럼 말이다.


아이스크림 하나의 효과가 이렇게나 훌륭할 줄이야.... 우울했던 감정이 입 속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보냉 백 속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옮기면서 또 한 번 고민했다.


'하나 더?!'


'혈당 스파이크로 죽는다 너?'


마음속엔 악마와 천사가 공존했지만 오늘만큼은 지난 5년 간 달콤한 음식을 참아내느라 고생한 내 몸속에 당분을 가득 채워주기로 했다. 아까는 요거트 맛 콘, 이번엔 녹차맛 콘으로 도파민 효과를 톡톡히 얻은 후 밀려드는 자괴감 또한 내 몫이었지만 말이다.


설탕이 두려운 이유는 그 중독성에 있다. 암 진단 전 나는 당 중독자였다. 밥 보다 디저트류를 더 좋아해서 식사 후엔 반드시 단 음식을 후식으로 즐겼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초콜릿이 들어간 아무거나였고,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는 뜨끈한 초콜릿 케이크 위에 얹어지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일을 할 때에도 에너지 원으로 초콜릿 과자나 쿠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당분이 암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돌이켜보면 암 환자가 되려고 환장한 사람의 식습관이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난 이후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단 것이 당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설탕의 중독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이 되니 나는 또 미친 듯 초콜릿이 당겼다. 지난 5년 간 초콜릿이 먹고 싶을 때마다 당근이나 사과를 대신 씹으며 허기를 달랬는데, 이젠 대체재에 만족을 느끼기에도 한계가 온 듯했다.


문득 어느 전이암 환자가 암이 전이되기 직전 그렇게 초콜릿이 당기더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이 날 만큼은 암이고 뭐고 당을 충족시켜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82% 카카오 함량이라 쓰인 초콜릿 통을 부여잡고, 며칠 굶은 걸인처럼 초콜릿을 한 주먹 쥐어 입에 털어놓기를 여러 차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당의 전율에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지난 4년 간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안 먹고 버텼다니 나도 지독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암은 그리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환우는 치료가 시작된 후 3년 안에 전부 재발하거나 전이가 되었다. 나처럼 지독하게 좋아하던 당류를 끊고, 튀김음식 끊고, 밀가루 끊고, 술을 끊어도 재발과 전이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다른 암종들은 5년이면 완치를 판정받기도 하지만, 유방암은 발병 후 10년, 20년 이후에도 재발을 한다. 5년 차 암 환자인 내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치라고 하기엔 조급하지만 진단 후 5년 차인 나는 최근 다시금 흐트러지는 식습관을 재정비 중이다. 아이스크림 두 개와 초콜릿 두 주먹은 지난 5년간 참아온 억압에 대한 보상이었지만 향후 1년 간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올해처럼 덥고 지루한 여름이 또 찾아오게 된다면 내 년 여름엔 다시 한번 아이스크림 두 개를 부여잡고 6년 차 생존을 자축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인간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다. '5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니 말이다. 최근엔 지난 4년간 먹지 않던 튀김음식, 밀가루 음식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먹는 편이다.


' 사람이 밥만 먹고사냐?'


건강식에 지친 내 몸이 포효했다. 그러나 튀김음식, 밀가루 음식을 먹는 날엔 여지없이 속이 불편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으니 암 환자가 먹기에 좋지 않은 음식임엔 분명하다.


가능한 한 지금껏 나를 재발과 전이로부터 지켜준 4가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기반으로, 흔들림 없는 수행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로 다짐해 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아무 두려움 없이 달콤한 디저트 한 조각 정도는 먹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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