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래된 병에 장사없다

암환자의 경제적 고충

by 영끌치유

때는 바야흐로 2년 간의 모든 암 치료가 종료된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 림프로 전이가 된 것 같은데요?..."


6개월마다 한 번씩 있는 정기 검사에서 의사는 림프에 새로운 낭종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가 새침검사를 받고 제주로 돌아왔다.


'아니 그럼 지난 2년 간 받은 그 고통스러운 치료들이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소리야?! 내가 항암을 16번이나 하고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받으면서 생사를 넘나들었는데 벌써 암이 재발됐다고?!!!!'


암 진단을 받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껴봤을 절망감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암에 걸리면 죽음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나 또한 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 죽음을 준비했다. 홀로 남을 아이가 걱정됐고, 자식을 먼저 보낼 엄마가 걱정됐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도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좌절감은 온몸을 짓누르다 못해 나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렸다.


그래도 항암치료와 수술이라는 현대의학의 끈을 붙잡고, 마지막 남은 희망을 움켜쥐며 견디길 2년 넘짓. 암이 재발한 것 같다고 했다. 이제는 현대의학이라는 마지막 동아줄 마저 한 낮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모든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했었던가? 지금까지 든든하게 의지가 되어주던 실비보험에서 연락이 왔다. 그 간 힘들 때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면역치료를 받았는데, 더 이상 실비에서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통보였다. 두 달간 요양병원에서 치료받은 비용 6백만 원 정도를 처리해 줄 수 없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하늘이 노래졌다. 지금까지 치료받고 쉬느라 2년 반을 놀았다. 그나마 젊은 날 들어놓은 암 보험으로 진단 시 1억 5천이라는 거금을 받았지만, 1억 5천이라는 돈은 2년 반의 투병 기간 동안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몸이라면 2년 동안 그 돈을 다 썼겠냐만 서도, 아이가 있었고 나를 간병하는 노모의 생활비도 감당해야 했다. 때마침 코로나로 찾아온 경제활동의 중단은 모든 가정을 위기로 내 몰았다.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투병에 전념한 나머지 나의 계좌는 텅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발의 조짐이 보인다고 했고, 믿고 있던 실비보험마저 더 이상 입원치료는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치료가 종료되면 다시 시작하려던 일도 재발 가능성의 소식과 함께 무산됐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안이 급습하니 정신이 무너져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정신과에 들러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어도 잠이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는 암이 아니라 정서불안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극단의 대처가 필요했다. 며칠 잠을 못 자고 괴로움 속에 허덕이던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 해?! 어차피 죽을 인생 그냥 나를 위해 마지막을 불사르자. 돈 걱정?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있는 돈 다 쓰고 죽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희한하게도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도 않았고, 경제적인 결핍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악을 쓰고 살고자 했으며, 지독하게 지키려고 했다. 남아있는 자식한테 얼마라도 남겨주고 싶었고, 머지않은 노후에 대해 준비하고자 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를 시한부 같은 인생이 말이다.


마음을 돌려먹자 신기하게도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 해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였는데 친구한테 VIP경기 초대장을 받고도 비용부담에 예약을 미루고 있던 터였다. 월드컵 호재를 누리느라 항공권부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있었는데, 알게 뭐냐, 죽기 전에 월드컵이라도 보고 죽자며 항공권을 예매했다. 내 생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월드컵 직관이니 비니지스 클래스를 타자고도 마음먹었다.


'내가 언제 나를 위해 이렇게 써 본 적이나 있었나?! 죽는다는 데 뭔 짓을 못 해....'


항공권은 자그마치 왕복에 5백만 원이 넘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5백이 뭐 대수냐 싶었다. 스티브잡스는 췌장암으로 죽기 전에 자신의 암을 고치는 의사에게 수천억을 주겠다고도 했다. 수천억에도 지킬 수 없던 생명인 것을, 스티브잡스의 발바닥도 못 따라가는 내 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돈 5백에 쩔쩔맬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비에 의존해서 받던 면역치료를 내 돈으로 받기로 결심했다. 면역주사는 한 방에 20만 원이 넘는 것도 있었고 암 환자들에게 쓰는 치료제들은 대부분이 고가였음에도, 일주일에 세 번은 하루에 20만 원 정도 하는 치료를 빠지지 않고 받았다. 수술 집도의는 요양병원에 가지 말라고 했고, 그들이 추천하는 어떤 약도 쓰지 말라고 했다. 주치의가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재발의 조짐이 보였으니, 주치의 말도 전부 들을 것이 못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이라도 써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사르지 않으면 눈 감을 때 자식을 볼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돈이 문제인가, 사는 게 중허지.


나는 앞으로 남아있는 삶을 오롯이 나를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 전직 교수이자 기업체 강사로서 하던 강의 일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교감신경을 극도로 자극시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강의 준비를 하던 습관도 나의 몸을 상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다시는 나의 몸을 갉아먹으며 돈을 버는 형태의 일은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 뭘 해 먹고살 거냐고?!


그런 걱정도 전부 부질없었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먼 미래까지 걱정을 사서 할 일도 없었다. 그냥 사는 거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죽으면 남은 자식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아이에겐 생부가 있었고, 외삼촌도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내가 걱정이지, 산 사람이야 어떻게든 살지 않겠는가...'


그렇게 현재로선 해결할 수 없는 걱정들에 대해서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고 나니 폭풍 속의 가시나무처럼 흔들리던 나의 마음도 진정이 되었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 간 힘겨운 항암치료와 수술, 방사선치료까지 잘 버텨준 내 몸에게도 미안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남은 생을 위해 쓰고, 태어났을 때 맨몸으로 왔던 것처럼 죽을 때도 맨몸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이렇든 저렇든 내가 번 돈이니, 내가 쓰고 가는 게 이치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삶과 돈에 대한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남은 인생을 즐길 태세를 모두 마쳤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시원한 것인지 비로소 통찰을 얻게 되었을 무렵,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서울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재발이 아니었어요... 조직검사 결과 상 악성종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어요. 아... 다행입니다."


주치의는 멎적어하며 판독 결과를 전달했다.


"네?!!!!! 그럼 림프에서 보인다는 낭종들은 뭔가요 선생님?"


"가끔 물혹 같은 게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당혹스러웠다. 죽을 준비도 모두 마쳤고, 돈도 펑펑 쓰기로 다짐했는데, 다시 살아야 한다니... 기쁘고 즐거워야만 할 상황에 갑자기 삶에 대한 집착과 돈에 대한 욕망이 솟구쳐 오르더니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6개월 후에 보자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지난 몇 주간을 뒤돌아보았다. 재발이라는 말에 밤잠을 설치며 지옥까지 다녀왔는데, 다시 생명이 주어졌다고 하니 인생이 한 장의 종이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죽음, 파산도 두렵지 않았었는데, 살아진다고 하니 또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걱정이 올라왔다. 정녕 걱정이란 살아있는 생명체의 숙명이란 말인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잠시, 일단은 재발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앞으로의 삶이 좀 더 길어질 수 있겠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다. 죽음을 준비하던 나에게 또 한 번의 생명이 주어진 것과도 같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삶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니 진짜 걱정도 팔자였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삶이 주어졌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죽음과 파산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늘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나는 2020 카타르 월드컵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고, 월드컵 VIP경기 초대장은 내가 쓴 비용과는 맞바꿀 수도 없는 대단한 것이었음에 지금은 웃으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수술이 끝난 후 2년 간 비싼 면역 치료도 쉬지 않고 받았다. 하기 싫은 일에 대한 미련을 내려 놓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초연하게 인생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받고 싶은 치료들을 받은 결과, 예후가 좋지 않다는 암종을 가졌던 나는 예후가 좋은 환자의 표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지금도 힘들게 투병 중에 있는 환우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1화암 진단 후 싹 끊은 음식 4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