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병원 vs 제주병원
“선생님, 살려주세요.”
일면식도 없는 처음 만난 주치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살려달라고 외쳤다. 의사는 잠시 당황하더니 별 일도 아닌 일에 호들갑이냐는 듯 나를 응시하며
“사진상으로는 종양 크기가 2.6Cm로 보이는데 조직검사 결과 상 삼중음성으로 확인됐습니다.”
“삼중음성이요?”
컴퓨터 모니터에 뜬 조직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호르몬 수용체가 없고, HER2 수용체도 음성인데 이 두 가지의 경우가 모두 아니면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의사는 가장 간단한 표현으로 나의 암 종에 대해 설명했다. 대충 내 유방암의 원인은 호르몬 수용체도 아니고 HER2 수용체도 아닌 다른 암 종이라고 해석했다.
“제가 확인을 좀 해봐도 될까요?”
의사는 딱딱하게 굳은 오른쪽 유방의 암 덩어리를 손으로 살짝 눌러보고는 같은 쪽 겨드랑이를 살펴보며 말했다.
“전이가 없어 보이고, 종양 크기가 수술 가능한 것으로 보이니 바로 수술을 진행한 후, 예후를 봐서 항암치료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수술이요? 선생님?”
“네. 아직 젊은 환자이고, 혹시 전이가 진행되기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으니 가슴 전절제를 하는 동시에 가슴 복원술을 동시에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의사는 간단명료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제주에서 만났던 의사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치 확진 환자를 대하듯, 유방암이 확실한데 암의 크기도 매우 크다며 겁을 잔뜩 줬었는데, 서울 대학병원의 의사는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간단히 수술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어떤 의사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울의 주치의가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주치의와의 초진 상담이 좀 짧게 느껴졌지만 뭘 알아야 질문이라도 던질 수 있는데 의학적으로 암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수술일정을 잡고 기타 검진을 받기 위해 진료실에서 나왔다.
제주도에 사는 나의 처지를 고려해 주치의 진료가 있는 날 가능한 모든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고, 병원은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의 일정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조율해 주었다. 병원을 결정할 때에도 며칠 밤 잠을 설쳐가며 심사숙고했었는데, 주치의만 맘에 드는 게 아니라 병원의 시스템도 환자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듯해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반 이후였다. 수술 전 받아야 할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는 일정이 하루 종일 잡혀 있어서 본관과 암 센터를 오가며 혈액 검사는 물론이고, CT, MRI, 심전도검사 등의 생소한 검사들을 받았다.
병원이 어찌나 넓고 받아야 하는 검사들이 그리도 많은지 그나마 내가 아직은 잘 걸을 수 있는 마흔 언저리의 환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의 환자들은 병원이 넓고 복잡해서 혼자 예약시간에 맞추어 검사실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실 찾아다니며 동굴 같은 기계 속으로 들어가서 CT촬영을 받았고, 또 다른 기계 속에서는 망치로 온몸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소음을 견디며 30여분을 엎드려 있어야 했다. MRI 검사였다. 주사 바늘도 몇 번을 꽂았는지 하도 긴장해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혼자서 하루 종일 넓디넓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여러 검사들을 받았다.
어떤 검사들은 단식 시간도 맞춰야 해서 종일 쫄쫄 굶었는데, 쪼그라든 뱃속이 헛헛하기까지 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했다. 건강한 사람도 이런 일정을 소화해 내려면 힘들었을 텐데 몸속에 암세포까지 있는 내가 수술 전 검사를 하루 종일 받으니, 암의 치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지치는 듯했다. 나는 병원의 큰 규모에 놀랐고, 예약 시스템에 두 번 놀랐다. 아무리 제주도 사는 환자라도 그렇지 그 많은 검사들을 하루에 다 받을 수 있게 해 주다니, 외국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암이라는 병이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보니 병원은 환자 배려차원에서 모든 검사를 일사천리로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듯했고, 조직검사 하나 받는데 2주 기다리라고 했던 지방의 병원에 비하면 서울의 대학병원은 너무나 신속하게 치료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지방의 환자들이 큰 병에 걸리면 모두 서울로 오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병원에 환자가 많은 것은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암 병동에 환자가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다니…’
그 많은 사람들이 내가 겪고 있는 힘든 과정들을 이미 겪었거나,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모두 나를 보는 듯해서 측은한 생각이 들다가도 나 혼자만 암환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병에 걸리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심경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진료와 검사가 모두 끝나고 병원을 나서니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병원의 검사실은 늦은 시간까지 검사 장비를 돌렸다. 8시 언저리에 예약해 두었던 제주행 비행기를 9시로 바꾸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하루 종일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매우 추운 날씨였는데,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된 몸뚱이를 뒷좌석에 눕히고 지친 몸을 달랬다. 치료에 필요한 검사를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 일단 첫 테이프는 잘 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암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이 나의 다음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