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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Sep 11. 2023

암의 원인을 찾다.

암 유발 습관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2주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코로나는 극심했고, 연 말이 지나가고 연초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유방암 진단과 함께 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왠지 아이와 함께 꼭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한 달 살기를 다녀오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말레이시아에서도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진단을 받은 시기가 2020년 12월이었고, 같은 해 1월엔 말레이시아에 있었다. 그전부터도 이유 없이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고, 뭔가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질 않았다. 감기는 왜 그렇게 자주 걸리고, 추위는 많이 타는지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몸속에 암세포를 품고 지난 수년간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종양이 수술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고 했고, 전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포털에서 찾아본 유방암 생존 관련 자료에선 그나마 3,4기 유방암에 비해 1,2기는 5년 생존율이 95% 이상으로 높았다. 내 종양의 크기는 2기에 준한 것이었으므로 확률 상 나는 앞으로 5년은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앞으로 2년 간은 꼼짝없이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항암 치료에 대해선 선배 언니한테 들은 바가 있어서 마음의 방탄조끼 착용은 이미 마쳤지만 암에 대해선 아는 지식이 별로 없었다. 건강할 땐 암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암이라는 병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만 있었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암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인터넷 서점으로 눈에 띄는 암 관련 서적을 몇 권 주문한 후, 어차피 정밀 검사 내용은 2주 후에나 나오니 내가 유방암에 걸리게 된 원인부터 파악을 해야 했다. 인터넷 검색상으로는 유방암의 원인은 스트레스와 서구적 식습관과 생활습관과 호르몬의 변화 등등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직업 군인 항공사에 오랜 기간 근무했고, 결혼 생활 내내 성향이 정 반대인 배우자와 겪었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으며 별거, 이혼, 독박육아, 경제적 부담감 등등으로 스트레스 속에서 지난 20년 간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식습관은 또 어떤가? 두바이가 거점인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7년을 근무하면서 20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거주했다. 나는 비행 데스터네이션에 도착하면 소고기 스테이크와 와인만 마셨고, 주식은 대부분 빵이었으며 버터와 치즈는 밥을 먹지 않아도 나의 내장을 두둑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구적인 식습관이 유방암의 원인이 된다는 데에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혹자는 우유와 커피도 유방암 환자에겐 안 좋다고 했는데, 난 평생 카페 라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당분이 암의 먹이가 된다는 글을 읽고는 탄식이 나왔다. 서양사람들은 식사 후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는데, 나는 뜨끈뜨끈한 초콜릿 파이 위에 얹어진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기 위해 일부러 주식을 덜 먹을 정도로 디저트 덕후였다. 달콤한 디저트를 너무 좋아해서 밥은 조금 먹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에 버금갈 정도로 과당이 많이 첨가된 음식을 20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먹어왔다. 강의 일을 하던 최근까지도 순간 에너지를 높이기 위해 수업 전엔 꼭 비스킷이나 초코바 같은 걸 챙겨 먹었다.    


생활습관은 또 어땠을까? 좋을 리가 없었다. 비행은 대부분 밤 시간에 출발하는 일정들이라서 밤 새 일한 후 해가 뜨면 잠드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자연의 섭리와는 반대로 생활하던 습관으로 인해 나의 생체 시계는 수년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당연히 호르몬에도 교란이 왔을 것이고, 비행 일을 그만둔 이후로도 계속 밤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 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암에 걸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다. 


내가 무지해서 스트레스 관리와 식습관, 생활습관을 돌아보지 못하고 내 몸을 소중히 다루지 못해 얻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 일상의 전부가 암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씩 바꾸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40년 간 쌓아온 나쁜 습관을 한 번에 전부 바꿀 수가 없으니, 쉬운 것부터 해 나가기로 했다. 스트레스는 암 진단을 받기까지 요 몇 주간 최고조에 닿았다. 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 보다 더 스트레스받을 일이 세상에 있을까?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말이다. 스트레스를 나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기에 오늘부터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식습관 개선에 집중했다. 


수술 전까지 종양의 크기가 커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으므로, 암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절제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쉬운 시도였다. 


우선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던 마블링 가득한 육식 식사를 줄이고, 무엇보다 즐겨 마시던 와인을 끊었다. 알코올이 1급 발암 물질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삶에 술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는가?’


를 외치며 음주를 즐겼다. 내가 거주할 당시 두바이는 술을 구매하기가 이슬람 종교법상 어려웠으므로, 비행할 땐 각 국의 면세점에 들러 유명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을 저가에 사서 쟁여 오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면세 가격에 승무원 할인까지 더해지니 남들보다 더 저렴하게 와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던 나이가 스물네 살 때부터였고, 20대의 대부분은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 식사 반주로 와인을 마셨다. 


‘고기에 와인이 빠지면 풍미가 없다’


라는 뇌피셜에 빠져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와인을 즐겼다. 결혼 후엔 일본에 살게 되면서 그나마 일식으로 식단이 바뀌었는데, 일본에선 또 그렇게 맥주와 사케가 맛있을 수 없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가볍게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이혼 후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 소주와 친해지게 되었고, 제주도에 내려오니 막걸리 맛이 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모임이 늘었고, 사람들이 모이면 꼭 폭탄주로 자리를 시작했기에 쏘맥 또한 습관처럼 마셨다. 자, 여기까지만 들어도 내가 암에 걸린 원인은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내 몸을 암이 걸리도록 만들며 살아왔으니 울 자격이나 있겠는가? 다행히 죽기 전에 몸에 이상이 왔다는 것을 알아챘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과 반대로 살면 될 일이다. 


우선 내가 2주 동안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쉬운 일은 일단 술을 끊는 일이었다. 


주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던 와인 병 및 냉장고에 있던 주류는 전부 치워버렸다. 다행히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었으므로 술을 끊는 일이 그 닥 어렵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이 삼 년 전부터 술을 마시면 해독이 잘 안 되는 듯 몸이 불편해서 반주도 와인 딱 한두 잔 정도만 마셔왔다. 


내가 지난 20여 년간 마신 술의 양을 생각해 보니 작은 연못 한 웅덩이 정도는 가득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내 몸. 일급 발암 물질을 이 십 년 넘게 흡수하며 살았다니… 


당분이 암세포의 영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침에 먹던 빵과 수시로 먹던 비스킷, 초콜릿 류의 간식을 끊었다. 저녁 식사 후엔 아무리 추워도 꼭 한 시간씩 동네를 걸었고,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식사량을 줄인 것도 아니고 고기를 끊은 것도 아니었는데, 단지 술을 끊고 식사 후 걷기만 한 것으로 64 킬로그램까지 이유없이 불고있던 몸무게가 2주 만에 60킬로로 줄어들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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