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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Sep 13. 2023

암, 알아야 산다.

공부만이 살길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강의를 하거나 고객 컨설팅을 할 때 늘 마음에 품고 있는 제1 전략이다. 기업체 강의를 다닐 땐 보통 청중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었는데, 좋은 강의를 하려면 청중이 어떤 직군 인지, 연령대와 성별은 어떻게 되는지, 그들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정보는 어디까지 인지, 성향은 어떤지, 강의에서 얻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기타 등등 청중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했다.


청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강의의 만족도도 높았다. 개별고객의 스피치 코칭이나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의 연설 코칭 및 취업 인터뷰 코칭을 할 때에도 나는 늘 상대의 심리에 포커스를 두라고 지도했다. 상대를 파악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 짓게 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의 접점에 닿을 수 있음을 고객들에게 강조했다.


그리하면 선거나 취업에서도 승률이 높아지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하물며 나는 암을 상대해야 하는데, 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죽을 확률이 높은 병’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처음엔 암에 걸려 죽는 줄만 알고, 혼자 소설을 쓰며 매일 밤 잠을 설쳤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나에게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는 건 죄가 맞았다. 암에 걸렸으니 상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아직 항암 치료가 시작하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암에 대해서 철저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해 놓은 암 관련 서적들이 집에 도착해서 일단 [유방암 굿바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니 유방암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했다. 검색 엔진, 유튜브 등에서 이미 유방암에 관련된 학술적인 정보는 많이 얻었지만, 그런 단편적인 지식으로만은 목마름을 채울 수 없었다.


치료 과정 또한 세세히 알고 있어야 했기에, 유방암 진단 후 10년 넘게 재발 전이 없이 생존해 있는 현 대학병원 의사가 집필한 [유방암 굿바이] 란 책을 암 공부 시작의 지침서로 삼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자 역시 나와 같은 삼중 음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었고, 책은 진단부터 치료 과정 그리고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에 대해 일기처럼 써 내려간 에세이였다.


삼중음성 유방암 10년 생존자가 집필한 책이 내가 암 공부를 위해 처음으로 집어 든 책이라니 왠지 내가 살아남을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조직 검사 후 유방암을 진단받기까지의 내용이 나왔는데, 내가 겪은 내용과 매우 유사해서 책이 단숨에 읽혔다. 무엇보다 유방암의 생물학적 특징에 대해서 내 주치의 얘기만으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던 많은 부분들이 해결되었다. 


저자가 쓴 의학적 내용을 좀 쉽게 정리하자면, 우리 몸속 세포의 표면 혹은 핵에는 다른 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용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들 수용체 사이의 신호를 매개로 세포들이 분화하고 죽는다. 


암은 세포 사이에 신호가 과다하게 발생해서, 또는 같은 신호를 보내도 수용체가 과민하게 반응해서 세포의 분열과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어 이상 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말한다. 


유방암에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HER2수용체가 존재한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용체가 과발현 이면 호르몬 양성 그룹, HER2수용체가 과발현 이면  HER2 양성 그룹, 이들 수용체가 모두 없는 것을 삼중 음성 그룹으로 구분한다. 


각 그룹별로 질병의 진행과 전이되는 패턴에 차이가 있고, 치료 약제의 선정, 예후 등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특정 수용체가 과발현 되어 있다면 그 수용체와 연관된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현대의학으로 유방암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호르몬 양성 그룹은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약제를 쓰는 것이 치료방법이고, HER2 양성 그룹은 허셉틴이라는 약이 나오면서 유방암 그룹 중 유일하게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하는 암이 되었다. 


반면 삼중음성은 수용체가 없으므로 치료약이나 표적 치료제가 따로 없고, 세포독성 항암약으로 빠르게 번식하는 이상세포의 증식을 막아 내는 게 지금까지 현대 의학이 발견한 유일한 치료 방법인 셈이다.


각각의 그룹마다 특성이 다른데 호르몬 양성이 그나마 좀 착한 암 그룹이고, 삼중음성은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그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는 삼중 음성 3기였으나 항암 치료 후 10년 간 재발, 전이 없이 생존해 있으므로 나 역시 승산이 없는 게임은 아니었다. 


게다가 작가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림프에 전이가 발생한 3기 유방암 환자였다. 나보다 암 발생에 있어서는 훨씬 불리한 젊은 나이였고, 3기 암은 5년 생존율도 1,2기 암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생존했고 재발, 전이도 없었다. 


나는 늘 확률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수학을 그렇게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단 1%의 생존율이라도 남아 있다면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결국 살아남는 자가 선택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종양의 크기가 2CM 미만인데 겨드랑이 부위 림프 전이가 없는 경우 1기 유방암이라 하고, 종양크기가 2CM~5CM 이면서 림프절 전이가 심하지 않거나 종양의 크기가 5CM 이상이지만 림프 전이가 없는 경우를 2기 유방암이라 구분 짓는다. 3기는 림프절에 퍼진 정도가 심해 다른 장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일컫고 4기는 다른 장기에 유방암이 전이된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유방암의 경우 1,2기 환자는 5년 생존율이 약 95% 이상이고, 3기의 경우 약 75%, 4기는 약 45%로 미만으로 생존 확률이 확 낮아진다. 그러나 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내 주변엔 1기 유방암 환자였지만 수술 후 바로 전신으로 전이가 일어나 5년의 생존율을 채우지 못 한 사례들도 있었고, 2기였지만 5년 안에 사망한 사례도 있었으며, 4기 환자였음에도 재발 전이를 대 여섯 번씩 경험하면서 20년째 생존해 있는 사례도 있었다.


5년 생존율에 대한 숫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서울대 병원장이었던 한만청 작가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에서 저자는 1998년 간암 진단 후, 수술로 암 덩어리를 성공적으로 제거하지만 곧바로 폐로 전이, 생존율 5퍼센트라는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동료 의사들조차 비관적인 예견을 낼 때, 기적적으로 암을 퇴치하고 20년 넘게 생존했다. 


당시 서울대 병원장이었던 의학박사조차 생존율은 그저 통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학과 데이터를 중시하는 의사도 암의 생존율에 대해서 맹신하지 않으니 나 또한 통계적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던 책의 저자도 3기 유방암 환자였지만 10년 간 무사히 생존해 있었고, 두 번째로 만난 책의 저자 역시 말기 암 진단 후 20년째 살아 있었다. 


우연히 고른 책들 치고는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는 것 같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용기를 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미리 맞춰놓은 대본처럼 매우 흡사했는데 아무리 상태가 나빠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한만청 저자는 글의 초입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존율이 떨어지고 검사 수치가 나쁘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내가 이 통계의 긍정적인 수치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차라리 통계 자료를 희망의 증거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암 환자에게 누가 어떠한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나는 단 1퍼센트의 생존자로 계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취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연구하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수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암을 돌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조언은 가슴 깊은 울림을 주었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공포로 넋이 나간 나에게 신이 보내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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