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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Sep 12. 2023

졸리는 되고 나는 안돼?

유방 절제술

“원래는 수술로 종양 제거 후 항암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검사 결과상 치료의 방법을 좀 바꾸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원체 표정의 변화가 없는 데다가 코로나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게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집도의의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수술로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었는데, 치료방법이 바뀌었다는 소리는 중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처럼 들렸다. 


“치료 방법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나요?


“아…”

주치의는 안타까운 한숨을 얕게 내뱉으며 말했다.


“선 항암 후 수술을 집도하는 방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단 종양 크기를 항암으로 줄인 후에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보통의 경우 삼중음성 유방암은 선 항암 치료로 종양의 크기가 작아지는 확률이 높습니다. 방사선 치료 여부와 이후 과정은 치료 경과를 보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수술만 하고 항암은 안 하게 되기를 빌며 매일 밤 기도 했는데, 왜 슬픈 예감은 비켜가질 않는 건지, 선 항암 얘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환우 언니로부터 항암 부작용에 대해 익히 들은 후라, 머리가 전부 빠진 내 모습부터 떠올랐고, 이미 속이 메스꺼운 기분이 들었으며 손톱 발톱이 빠지는 상상 더하기 응급실에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생생히 떠올라 두려운 생각이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술을 먼저 하게 될 경우 가슴 복원술을 함께 하기로 했었기에 성형외과 의사와도 면담이 잡혀 있었다. 의사는 복원술 시 사용하게 될 실리콘 보형물을 사이즈 별로 보여주고는 영어로 적힌 나의 검사 결과를 다시 들여다보며 옆에 앉아 있던 연구생에게 이야기했다. 


possibility of metastasis?”


“ 아… 전이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연구생한테 했던 말을 내가 그만 알아듣고 말았다. 그제야 왜 주치의가 선 수술이 아닌 선 항암으로 치료 방법을 바꾸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 몸속엔 유방암세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선 항암 후 수술 하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어서 가슴 복원술 여부는 경과를 지켜보면서 결정하게 될 거예요.”


바로 진행하기로 했던 유방암 수술이 항암 후 수술로 늦춰지면서 가슴 복원술의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수술과 동시에 한쪽 복원술만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양쪽을 다 성형하던지 양쪽 다 완전히 절제를 하고 가슴 성형 수술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온라인 유방암 환우 커뮤니티에 물어보았다가 괜스레 혼쭐만 났다. 


요는 환자가 치료에 집중하지 않고 미용에 신경 쓴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환자의 만족도를 위해서 유방암 수술 시 동시 복원술을 권유하는 마당에 유방암 환자는 미용에 신경 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죽기 전까지 아름답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인 것을 말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BRCA유전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멀쩡한 양 가슴과 자궁을 적출하고 가슴 성형을 선택했다. 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많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졸리가 굉장히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오롯이 미용의 목적으로 유방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세상천진데, 졸리는 유방암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양성인 데다 엄마와 언니 모두 유방암으로 죽었다. 그녀의 선택을 두고 남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도 BRCA검사에서 유방암 가족력이 양성으로 나왔더라면 졸리가 했던 선택을 과감하게 따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에서 내 유방암의 원인은 가족력 없음으로 나왔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계속 딸아이를 걱정했는데, 유전적으로는 아이에게 유방암을 물려주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잔병치레가 많아서 늘 걱정스러운 딸아이에게 내가 유전적으로 암의 DNA를 전달해 줬더라면 자괴감으로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선 선 항암을 8차례 받게 되실 건데, AC라고 불리는 약물 치료 4차례와 도세탁셀이라 불리는 약물치료 4차례, 총 8차례 항암 치료를 수술 전에 받게 되실 거예요. 수술 전에 종양의 사이즈를 최대한 줄여 부분절제술을 하려는 것입니다. 둘 다 세포독성 약물 치료이고요, 그에 따른 부작용이 따릅니다.”


“네, 선생님, 구토와 탈모 증상은 예상하고 있어요. 혹시 탈모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없을까요?”


그 와중에도 머리카락만은 지키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안타깝지만 유방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모두 세포 독성 약물이라 탈모 현상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구토나 어지러움 증 등이 부작용으로 따라올 수 있는데, 요즘은 부작용을 줄이는 약제들이 잘 나와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으실 거예요, 다만 항암 치료 중에 고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젊은 종양내과 여의사는 유방외과 의사와 한 팀으로 일해서 그런지 담백하게 환자를 대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항암 치료가 힘들지만 그래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선생님, 저는 항암치료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는데, 오늘 제주도에서 올라온 김에 그냥 항암 약 맞고 가면 안 될까요?”


어차피 시작할 항암 치료인데, 연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여의사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보통 환자분들이 항암 치료를 결정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셔서 상담 후 바로 투약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음 주에 오셔서 투약받으시는 걸로 예약을 잡아 드릴게요.” 


'아… 다음 주에 이 병원엘 또 와야 한다고? 마음의 준비 다 끝났는데, 무슨 또 준비를 하란 말인가? 그 사이 암세포는 무럭무럭 자라날 텐데…'


항암 치료 없이 선 수술과 함께 가슴 복원술을 하기로 했던 계획은 정밀 검사 이후 선 항암 후 수술을 하는 것으로 치료 방법이 바뀌었고, 제발 항암 만은 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던 2주 간의 염원은 한낮 부질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라는 심정으로 선 항암 치료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앞으로 받게 될 항암 치료에 대한 전략을 세웠다.


2021년 1월. 뭔가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시기였다.


긴긴 장기전을 준비하는 각오로 마음의 무기를 장전하고, 함께 맞서줄 가족들을 독려하여 이 항암 치료라는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


암과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와 싸운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지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싸움이라는 건 잘할 줄도 모르고, 싸워서 단 한 번이라도 마음 편해 본 적이 없다. 암과 싸워서 어떻게 이긴다는 말인가? 이미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암세포가 가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쑥쑥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암은 항암 약물들이 나 대신 싸워줄 것이고, 면역 세포들이 대신 싸워줄 것이다. 나는 내 몸이 항암 약물로 암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지해 주고, 면역 세포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전략을 세워 암과의 대적에서 살아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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