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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Jun 17. 2016

감정

1.

무력함.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밀려오는 공포와 뼈아픈 자괴감. 살릴 수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 나 자신에게 덮쳐오는 부재로 인한 공포와 더불어, 공감도 이해도 해결도 해 줄 수 없는 고통을 겪고있을 저 사람에게 느껴지는 끝없는 미안함. 사지가 사라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것만 같은 느낌.


2.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두려움과 슬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물리적으로 심장이 끊어지는 아픔이 오고, 나락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것만 같은, 도대체 얼마나 그 슬픔이 클 지 보이지도 않아서 미치게 무섭고 떨리는 마음. 그 막대한 고통이 '실제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유추해보는 정도' 라는 걸 깨달을 때 닥치는 공포. 끝없는 어둠이 발끝까지 다가오고, 우주만큼의 크기인, 살면서 인간으로서는 체감하지 못한 그 크기를 체감하게 되는 그 때.


3.

죄책감.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라는 자책이 말 그대로 심장을 여러개의 대바늘로 찌르는 느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애가 끊어지는 마음 위에. 그런 내 자신을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와 고통이 몰려올 때. 모든 문을 닫고 조용히 울려고 해도 짐승같이 꺽꺽대는 소리가 올라오고, 머리를 찧든 가슴을 치든 마음이 아닌 다른 곳이 아프지 않으면 심장쪽의 고통이 제어가 되지 않는 가장 끔찍하고 깔끔하지 못한 감정. 다 울고 나서 심장에 꽂혀진 꼬챙이들을 빼보면, 살점이 더럽게도 녹아 붙어있다.


4.

허무함. 삶 자체에 대한 실망.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자조. 내가 딛고 살아온 하루하루에 아무런 근거도 없었음을 알게되는 때. 이렇게 하면 암에 걸려요,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어요, 이런걸 보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 라는 말과 글이 전부다 세살짜리 어린애가 왼손으로 쓴 성인 코미디로 보이는 순간.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이 가짜로 보이게 되고,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주려는 시도들이, 아빠가 사라지고 남은 뼛조각 앞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것.


5.

허탈함. 내가 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왔던 것들, 내가 참 오랫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써온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혹은 내가 원했던 것을 끝내는 가질 수 없겠구나 하는 깨달음. 어쩌면 남아있었던 날들을, 내가 가질 수 없는 그리고 아빠가 줄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며 낭비해버린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 니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너무 많은 마음과 시간을 쏟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물음에,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라고 얘기하며 울던 내 자신이 가장 초라해보이고 못나보이는 순간. 조금이라도 일찍 타협할 줄 알았더라면, 남아있는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조금 덜어졌을까.


6.

외로움. 그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홀로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 때의 외로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내 세상에서 완전히 무력하게 고꾸라지는 모습을 볼 때 찾아오는 완전한 고립감.


7.

미칠 듯한 그리움.


8.

억울함.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를 '삶의 허무함' 말고는 찾아볼 수 없을 때, 그를 부정하고 나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억울함. 저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도 저들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부정적인 상황을 내가 초래한 것이 아님을 알게될 때마다 울컥울컥 치솟는 감정.


9.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멱살 잡고 끌며 하루를 같이 지나는 몇몇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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