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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Jan 07. 2016

꾸준함이 가져다 주는 것

좋은 습관이나 성공 같은게 아니다

얼마 전 여행 사진의 대부분을 구글 포토에 백업했다. 말이 백업이지 재앙에 가까운데 예전에 찍었던 거의 모든 사진이 순서가 다 뒤엉켜버렸다. 07년부터 11년까지의 사진이 뒤섞여서 보다보면 기억이 재정돈되어버릴것 같은 세기말적 느낌이다. 워낙에 귀찮은 게 많은 성격이라 무조건 날짜를 기본 설정된 날짜로 해놓다보니 사진들이 시간을 잃었다.


이 게으른 내가 요새 하는 것은 심심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한 장씩 올리는 일이다. 그동안 빛을 못 본 사진들을 무작위로 골라 올리는 재미가 있다. 그동안 인스타그램 피드는 마치 내가 그 다양한 장소들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돌아본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변한다. 5년 6년동안 찍은 사진들을 마치 어제 찍은 듯 올리는 일은 참 쉽다.


내 사진을 라이크한 사람의 피드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재밌어서 몇 번 하다보니 습관이 되었다. 시간이 날 때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아, 퇴근길 지하철에 사진을 올린다. 하다보니 남들 피드를 훔쳐보는 소소한 재미 뿐만 아니라, 뭔가 괜찮은 사진과 이야기를 공유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도 느낀다. 직접 골라 올리는 사진들에 애착도 가고, 여행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생긴 것 같아 자꾸만 들여다보게된다.


놀이가 의식이 되고 의식이 의미가 된다. 더 크게 노력하거나 전력으로 질주하는 일 없이, 그저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 일상에 특별한 의미가 덧대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들을 하고있다. 워낙에 게으름이 천성인 성격이라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즐거움이랄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의도적으로 꾸준히 하는 행동이 덧대지면 꽤나 도톰한 의미가 된다. 만족스러울만큼 크다고 해야하나.


월화수목금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집에 오다보니 일이 아닌 다른 것을 하려면 어쨌든 조금씩 꾸준히 하는 수 밖에는 없다. 운동을 하려면 월요일 수요일, 상담을 가려면 매주 금요일, 언어를 배우려면 또 어느 남는 시간을 계속해서 꾸준히. 딱히 큰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요새 이 반복되는 것들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위안을 찾는다.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가 없는데, 뭐라도 하고 있다 라는 위안은 1차적인 것이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적어도 한 두가지 일은 나누어 하겠구나. 그런 점에서 공통점은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삶이로구나 할 만큼 아주 반짝거리거나 아주 진하지 않아도, 그래도 이런 맹물같은 삶이라도 계속되고는 있다.


남몰래 희망도 가져본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꾸준히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은 삶에 얼마간의 의미를 주는 것 같다. 가오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도 살았는지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그냥 무딘 것이 아니라 이런 삶도 조금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이런 사소한 일도, 곧 나에게 어느 만큼의 의미와 만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썼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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