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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Nov 09. 2017

해외취업 이야기

면접 시원하게 말아먹은 이야기+말아먹은 이들을 위한 꿀팁

서론


1차 인터뷰를 1주일 준비해서 통과하고, 2차 인터뷰를 다시 1주일 준비해서 오늘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멘탈은 붕괴되었고 며칠째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몸은 쓰레기가 되었다. 밖에 안나가고 면접 준비만 하면서 온갖 단것들을 먹어치워서 몸이 너덜너덜.. 자려고 누워도 잠도 안오고 이 경험들을 정리해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애초에 처음에 이걸 '한 번 해 볼래!' 라고 생각한 이유가 어차피 안 되어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근데 이게 말아먹고 가만히 누워있는다고 흑역사가 알아서 좋은 경험이 되지 않더라. 어떻게든 (멘탈 승리 조차도!) 노동이 투입되어야 하는 부분이구나. 깨닫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퍼


링크드인의 위치를 지금 있는곳 (독일)으로 변경하고 얼마 안되서 링크드인으로 연락이 한 통 왔다. 메일 제목은 Hello from Facebook 이었는데 제목만 보고 스팸인 줄 알았다. 아니 이게뭐야 진짜 오퍼잖아? 라는걸 깨달은 순간 이미 내 멘탈은 더블린도 갔다가 샌프란도 갔다가 면접도 보고 취업도 했다가 퇴사도 했던 것 같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처음 온 기회가 왜 하필이면 페이스북이란 말인가? 처음 학교를 통해 미국에 인턴십 기회를 알아볼 때 첫 인터뷰가 CBS였던 기억이 났다. 지금도 못하지만 그때도 못했던 영어로 새벽에 첫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역시나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그 레슨을 토대로 이어진 인터뷰는 그나마 선방했던 기억이 난다. 준비 안 된 이에게 찾아오는 행운같은건 없는걸 그 경험을 통해 아주 뼈저리게 배웠던 관계로, 나는 말도 안 되는 행운에 설렜지만 한편으로 불안했다.


첫번째 인터뷰(?)


리크루터와 폰 스크리닝을 하고 거기서 별 문제가 없으면 라이팅 과제를 준다. 나는 이 30분의 폰 스크리닝을 위해 3~4일을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워드로 15장을 써가며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했다. 엄청난 집중력과 생산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폰 스크리닝은 간단했고, 일어나서부터 전화 받을 때 까지 커피를 한 다섯 잔 연달아 마신 것처럼 각성상태여서 도저히 앉아있을 수도 없었던 나는 전화가 끝나자마자 엄청난 졸음이 쏟아지는 신비로운 현상을 경험했다. 수능만큼 떨렸다. 한국어로 400단어 정도의 (워드 한 장 분량) 라이팅을 써내고 잤다. 라이팅이 매우 만족스러웠으므로 뿌듯했다. 그 다음날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이 왔고, 그 일주일 뒤로 비디오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상세한 폰 스크리닝 후기: 직무에 대해 설명해주고, 직무와 관련된 자기소개를 하라고 시키고, 한국 페이스북에서 신고되는 게시물 종류를 알고있는지, 데이터 관련 경험이 있는지 물어봄

*상세한 라이팅 후기: 페이스북 또는 이 세상에서 단 한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걸 바꿀거고 넌 무엇을 할거니? 라는 문제에 대해 3~400단어로 쓰기. 시간은 24-48시간 이내.



두번째 인터뷰


두번째 인터뷰는 준비하기 전부터 축축 쳐졌다. 리쿠르터가 정말 정말 상세하게 준비해야될 걸 메일로 알려주는데, 아니 이런것까지 다 알려주면 도대체 뭘 보고 뽑겠다는거야..? 싶을정도로 세세하게 알려준다. 그걸 읽으면서 진짜로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ㅋㅋ) 이전 면접 경험들과는 다르게 지원동기를 생각해내는 일이 좀 어려웠다. 왜 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내 자신에게 대답하는데만 하루이틀정도가 걸렸다. 첫번째 인터뷰 준비때 너무 전력투구를 해서 그런가 인터뷰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고, 한문장 쓰면 잠이 오고 한문장 쓰면 정신이 나가고 그랬다. 몸이 완전히 말을 안듣는데 억지로라도 뭐라도 써넣는게 힘들어서 아 두번째 인터뷰를 통과해도 세번째를 이렇게 준비해야 될텐데 정말 하고싶지 않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아니 그래도 떨어지면 너무너무 슬플거야! 2주를 꼬박 바쳤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 생각은 나를 정말 정말 도망가고싶게 만들었다. 인간의 자기예언 효과는 엄청나서, 나는 결국 세번째를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오늘 있었던 인터뷰를 말아먹었다.


*상세한 비디오 인터뷰 후기: 자기소개, 한국내 페이스북이나 소셜미디어에 대해 알고있는 통계, 한국 페이스북에서 자주 리포트되는 것들, 어떻게 가려내고 해결할 수 있는지, 데이터를 다뤘다고 하면 어떤 데이터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지 등 말한 거에서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준비한 내용은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음. 왜 그렇게 생각해?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처리할거야? 이런 질문들이지만 사실 질문 자체는 난해하지 않음.


소회


잡 디스크립션으로 보아 주니어 레벨의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최고(!)의 벽은 이렇게 높구나..! 를 실감한 30분이었다. 사실 너무 간단한 질문들이었는데 준비기간 내내 변죽만 두드리고 있었구나 를 면접중에 실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약 5분간 인터뷰어에게 역으로 질문할 기회를 주는데, 궁금한거나 물어보자 싶어서 질문을 던졌을 때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인터뷰어가 본인이 하는 일과 생각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하는게 신선하고 놀라웠다. 아 저런 사람이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거구나. 거기서 난 깔끔하게 내 실패를 인정할 수 있었지.....만 역시 멘탈은 탈탈 털렸다.


애초에 원하지 않았지만 단지 던져졌다는 것만으로 엄청나게 원하게 되는 ㅋㅋ 나를 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독일에 있는 동안 마음속으로 정한 것이 1)당분간은 (커리어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 2) 독일어로 적어도 1년간은 심리학 공부를 할 것 (공짜니까) 3) 다시는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알바나 과외만 하며 살더라도 자연과 함께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 것 이었고 이 결정을 내리는동안 충분히 심사숙고했었다. 그런데 메일 한 통으로 저 1/2/3을 그냥 다 날려버릴 준비를 하고있더라. 아니 그래도 페이스북인데.. 싶어서 내 자신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면죄부를 주긴 했지만 내 결정들이 충분히 단단했다는 점에서 그게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지를 (ㅋㅋ) 보는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참 걱정없이 독일에서 꿈만꾸던 회사 인터뷰 준비를 하는건데도 사람이 이렇게 피폐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걸ㅋㅋㅋ 난 자신에게 고통주기 1인자라는 점을 배웠다. 내가 잘하는건 이건데 이런 자질을 필요로 하는 회사는 없으신지...? ㅋㅋ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되는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말 생각보다도 너무 쉽게 내가 원하는 것과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경시하게 된다.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 교육이 낳은 습성일거야..? 좀 괴롭고 힘들고 모든게 망가져도 목표만 달성하면 모든게 괜찮아 보인다고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지. 라고 남탓해본다.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계획을 하게 되버리고, 그 계획이 엎어지니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계획조차 의미가 없어보이는 사태를 경험했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이런 걸 레슨으로 배울 거라곤 1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정말 좋은 회사와 인터뷰를 했구나 라는 뿌듯함과, 흥미로운 경험 정도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고 나니 애초에 누가 빌려준 자전거였든 내가 탄 자전거였든 헬멧이 좋든 나쁘든 떨어진다는건 여러가지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거구나. 너무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여기가 아니었어도, 떨어졌다는거 자체가 혹은 조금이라도 다른방향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움직이고싶지 않게 하는구나. 실패가 경험이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 당연히 돌아보면 레슨은 남지만 매번 쳐맞는게 좋은 교훈은 아니니까..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건,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필사적으로 나만은 지켜야겠다 라는 깨달음이다. 나를 너무 흔들 것 같으면 강동원이라도 공짜 커피 마시러 안 가야지. ㅋㅋㅋㅋㅋ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한 세번 정도는 더 커피 마시러 나갔다가 내상입고 앓아눕지 않을까 싶다.


말아먹은 하루를 보낸 이들을 위한 꿀팁


나처럼 뭐라도 쓰면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말아먹은 하루를 보낼 때 꼭 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기부다. 쓸데없는 데 돈 썼다고 나중에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 했다는 뿌듯함으로 조금은 편안하게 자러갈 수 있다. 오늘도 기부하러 가야지. 내 불행이 이렇게 오늘도 세상에 도움이 됩니다. ^^ㅋ 따뜻한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도 정말 도움이 되고, '니가 실패해서 정말 다행이야! 좋아!' 라고 해 줄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도움이 됩니다. 기부하러 가야지. 그리고 푹 자고 나면 내일부터는 3주동안 덮어놨던 독일어 책을 펴고 독일어 동사 과거형을 외우련다. ㅋㅋ


** 아참 기부하기 좋은 플랫폼은 많습니다. 전 카카오 페이가 편해서 카카오 같이가치 https://together.kakao.com/ 를 씁니다(홍보아님ㅋㅋ)만 네이버 해피빈https://happybean.naver.com/도 있고, 각자 정기후원할 비영리 단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비영리와 영리 모두에서 일했던 1인으로서 내가 낸 돈이 제대로 쓰이는 지를 걱정하는건 비영리보다 영리에 해야하는 질문이며/ 당연히 비영리에서도 인건비 광고비 배송비 기타 잡비 등 비용이 들어가기에 내돈이 다 전달되는건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낸 돈이 통째 사라지는 일은 매우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만원 써서 아무거나 사고 나중에 괜히 돈버렸다고 후회하지 말고 기부하세요 여러분 ^.^ 한번 해보면 효용성에 중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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