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배우는 철학의 지혜

왜 지금,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가?

by 건축가 김성훈
"철학의 역사", 나는 아직도 만년필과 필사 그리고 핸드드로잉이좋다. 이게 나의 철학이다.

Philosophia, 지혜를 사랑하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다. '사랑하다'라는 뜻의 필로스(philos)와 '지혜'라는 뜻의 소피아(sophia)가 만나 '지혜에 대한 사랑', 애지(愛智)를 의미한다.

피타고라스가 처음 이 단어를 사용했고, 플라톤에 의해 널리 퍼졌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자신을 '지혜로운 자'가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완성된 지혜의 소유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혜를 찾아 나서는 여행자. 그것이 철학자였다.

지난편 "2026 위버멘쉬"에서 니체의 자기 극복과 자기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철학적 지혜를 배우고 만들어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세 번의 문명을 살아가는 X세대

나는 X세대다. ( 보통 1965년 생부터 1979년생까지를 말한다.)

대학교 1학년-2학년 때는 제도판에 로트링 펜을 들고 밤을 새웠다. 컴퓨터는 켜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컴맹'이 태반이었던 시절이다. 전유성이 "컴퓨터 잘하는 법"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던 그 시대를 기억한다. 3학년이 되어서야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했고, 군 제대 후 돌아오니 세상은 윈도우와 인터넷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그리고 지금은 AI 시대로. 나는 세 개의 문명을 가로질러 살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대적으로 느린 프랑스에서 유학과 실무를 경험했다. 그곳에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뜻밖에도 '속도'가 아니라 '사유'였다.


"왜?"라는 질문을 처음 마주하다

프랑스에서 논문을 쓸 때의 일이다.

수능 초창기 세대인 나는 한국식 주입교육의 결정체였다. 단 한 번도 "왜?"라는 질문을 하고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냥 외웠다. 정답을 찾았다.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논문 지도교수 앞에 앉았을 때, 처음 받은 질문이 이것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 동안 나에 대한 질문,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을 다시 발견한 인류처럼

오늘, 우리는 겁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어떤 감정보다도 무섭다. 동시에 설렌다. 마치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니, 어쩌면 불을 다시 발견한 것처럼.

ChatGPT가 대중들에게 사용된지 불과 1년-2년 남짓. AI는 이미 내가 평생 갈고 닦은 설계 능력을 단 몇 초 만에 구현한다. 내가 밤새 고민하던 글을 순식간에 작성한다. 이 속도,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있다.

이것은 편리함을 넘어선 실존의 문제다.


철학사가 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철학사는 크게 고대-중세-근대-현대로 분류된다. 수많은 전환점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오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르네상스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신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이어지며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성이 중심이 되었다.

두 번째는 니체의 위버멘쉬와 영원회귀다. 신이 죽은 시대,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시대에 니체는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 것인가?" 그의 답은 명확했다.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하라.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라.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세 번째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시대. 이제는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조차 의심받는 시대. 우리는 또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은?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거대한 변화는 언제나 있어왔고, 인류는 그 변화를 통과해왔다. 르네상스도, 산업혁명도, 정보혁명도 결국은 지나갔다. 이 AI 혁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처럼,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이 순간을 후회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철학, 지혜, 기준이다.

인류는 수천 년간 진리를 탐구해왔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으며, 니체는 "자기를 극복하라"고 했다.

모두 다른 말 같지만, 결국 하나를 향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퍼스널 브랜딩을 넘어서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자기만의 진실, 자기만의 지혜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 수 있는 그릇과 지혜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지혜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

그것이 지혜일 수도, 예술일 수도, 건축가인 나의 경우는 좋은 공간과 환경일 수도 있다.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질문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철학자를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른 이유를 이제 안다. 지혜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기술은 도구다. 불이 그랬고, 화약이 그랬고, 원자력이 그랬듯이,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철학에 따라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AI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란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란 질문.

그 답은 기술 매뉴얼에 없다. 경영 전략서에도 없다. 그 답은 철학에 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다.

니체가 말했듯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변화의 시대는 우리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더 단단한 철학을 갖게 만들 것이다.


함께 만들어갈 질문 그리고 고지혜

나는 건축가로서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공간'이다.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 이는 글로, 어떤 이는 음악으로, 어떤 이는 요리로, 어떤 이는 교육으로 자신의 지혜를 나눈다.

AI가 대신 생각해주는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다.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찾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나누는 것.


변화가 두렵다면, 괜찮다. 나도 두렵다.

하지만 AI 시대의 철학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

"삶은 스스로를 극복하고 또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
"함께 나누고 성장하라."

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우리의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지혜는 무엇인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이미 철학이다.
그 질문을 던지는 우리가 이미 철학자다.

함께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보자.
함께 이 시대의 철학을 만들어가자.

우리의 2026년을 응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지혜를 기대한다.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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