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노마드, 나는 출장러가 아니라 여행자였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SRT를 자주 이용하는 나는 수서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역무원이 묻는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보는 얼굴이라 이제 인사도 하며 지낸다.
"해남요. 솔라시도 산이정원 프로젝트 때문에요."
"또 출장이네요. 힘드시겠어요."
예전 같았으면 "네, 좀 그렇죠"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에요."
역무원이 살짝 웃는다. 농담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기 전까지, 나는 내가 출장 다니는 건축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의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삶 전체가 다시 보였다.
"여행자가 보내는 신뢰는 환대와 쌍을 이루고 있다."
나는 출장러가 아니라 여행자였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치고, 옆에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가 놓여 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창밖으로 남한강이 보인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계절마다 색이 다른 산들. 이 풍경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매주 두 세 번씩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내가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처음 받아들인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학교를 다녔고, 건축 사무소에서 일했고, 아이를 키웠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아무리 프랑스어를 잘해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는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 머무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것이 서러웠다. 완전히 속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여행자로 산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것을. 여행자는 더 넓게 보고, 더 깊게 듣고, 더 많이 배운다. 여행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여행자는 신뢰를 보내는 법을 안다.
서툰 프랑스어로 빵집에 들어가던 첫날을 기억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크루아상 두 개 주세요"라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 발음이 엉망이었을 텐데도 활짝 웃으며 제일 따뜻한 크루아상을 골라줬다.
"처음이에요? 프랑스어 잘하네요!"
거짓말이었다. 내 프랑스어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 속에는 진짜 환대가 있었다. 낯선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주려는 인류의 오래된 본능.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신뢰를 보내는 여행자에게 인류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나는 그것을 몸으로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양평에 집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서울에서 일하는데 왜 양평에 사세요? 통근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그것을 통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의 여행이다. 아침에 양평을 떠나 서울로 가고, 저녁에 다시 양평으로 돌아온다.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매일 경험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세 번, 더 긴 여행을 떠난다.
부산, 김해, 밀양, 부안, 목포, 해남, 진도, 인제, 울진 등. 지역 공간 기획 및 건축 프로젝트로 전국을 돌아다닌다. 건축가이자 공간 스토리텔러로서 각 지역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공간으로 번역한다.
이것을 출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라고 부른다. 김영하 작가가 말한 "일상의 부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내 일을 의미 있게 만든다.
지난달, 부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원들과 연말 워크샵 겸 현장 답사를 갔다. 공식 일정은 오후 2시까지였다. 하지만 회의가 일찍 끝나 시간이 남았다. 현지 공무원이 말했다. "점심 드셨어요? 여기 국수 맛집이 있는데..."
조그만 국수집이었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동네 주민들만 오는 곳. 주인 할머니가 직접 뽑은 면으로 만든 국수 한 그릇. 그 국수를 먹으며, 나는 진짜 인제를 배웠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 동네 이야기, 공무원이 털어놓는 지역의 고민들, 옆 테이블 주민들의 일상적인 대화.
이것이 바로 환대다.
나는 외부인이다. 서울에서 온, 프랑스에서 공부한, 무언가 제안하러 온 건축가. 하지만 그들은 나를 받아들였다. 신뢰로. 그리고 나는 환대로 응답받았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제안서를 다시 썼다. 오전 회의에서 나온 공식 자료로는 절대 쓸 수 없었던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진짜 이야기가. 진짜 필요가. 진짜 가능성이.
이것이 여행자의 특권이다. 신뢰를 보내고, 환대를 받고, 그 순환 속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김영하는 이렇게 이어간다.
"달의 표면에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달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풍경을 볼 때, 나는 안다. 이 아름다움의 비밀을. 저 산 너머 마을에서도, 강 건너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환대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건축가로서 나는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태양광 패널이나 단열재에만 있지 않다. 신뢰와 환대의 순환 속에 있다. 지역 주민들을 신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환대하고, 그들의 삶을 존중할 때, 비로소 그 공간은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100년을 견딜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는 내 철학도 여기서 나온다. 각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가 결국 가장 보편적인 인류애로 연결된다는 것을. 여행하며, 나는 계속 배운다.
노트북, 책, 노트와 펜
내 가방은 언제나 같다.
노트북 한 대, 책 한 권, 노트와 펜. 이것이 전부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어디서든 생각할 수 있고, 어디서든 쓸 수 있다. 기차 안에서, 호텔 로비에서, 지역 카페에서, 심지어 국수집 테이블에서도.
김영하 작가는 오랜 여행 끝에 "자신이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프랑스에서, 한국에서, 양평과 서울 사이에서, 수많은 지역을 오가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본질적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다.
정주하지 않는 것이 불안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동 속에서 나는 더 온전해진다.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듣고, 더 자유롭게 생각한다.
인생은 여행의 축소판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여행 아닐까.
태어나면서 시작된 긴 여행. 낯선 세상을 헤매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환대받으면서. 우리는 모두 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승객이다. 내가 매주 떠나는 출장은 그 긴 여행의 축소판이다. 작은 신뢰를 보내고, 작은 환대를 받고, 작은 발견을 하고, 작은 연결을 만든다.
부안의 국수집 할머니, 목포의 국수집 주인, 강릉 프로젝트에서 만난 청년 기획자, 밀양에서 차를 태워준 택시 기사.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만든다.
김영하는 여행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다른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정확하다. 내 출장도, 내 이동도, 내 노마드 삶도 결국 그런 과정이다.
출장이 아니라 '여행의 이유'
"또 출장이네요. 힘드시겠어요."
이제 나는 이렇게 답한다.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에요. 그리고 정말 좋아요."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어떻게 좋을 수 있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이 나의 '여행의 이유'라는 것을.
일정에 쫓기는 출장러가 아니라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로 지역을 만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열린다. 이야기가 흐른다.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좋은 공간이,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기차가 곧 수서역에 도착한다. 가방을 메고 일어서며, 나는 다시 한번 여행자가 된다.
오늘은 또 어떤 신뢰를 보낼까. 어떤 환대를 받을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어떤 발견을 하게 될까.
이 작은 여행들이 모여 만들어낼 풍경을 상상한다. 달에서 본 지구가 아름다웠던 것처럼,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볼 때, 이 수많은 여행들이 만들어낸 환대와 신뢰의 순환이 아름답게 빛나기를.
그것이 나의 여행의 이유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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