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라디오에 얽힌 추억
내가 초등학생 때, 그러니까 1990년대 초반은
가정에서 인터넷을 쓰던 시대가 아니었다.
미디어라는 건 신문, 잡지, 텔레비전 방송을 의미했고,
거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듣던 시대였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11살 12살이 됐을 무렵, 아빠가 생일선물로
조그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소니의 워크맨이 휴대용 음향기기의
대명사와 같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받은 건 삼성에서 만든 마이마이라는
포켓 사이즈의 플레이어였다.
거기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음악도 듣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
라디오 방송이 잡히는 주파수를 맞추면
스피커나 이어폰을 통해
DJ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당시에 유명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가수 이문세 씨가 진행하는 MBC FM의
‘별이 빛나는 밤에’.
지금은 작사가 김이나 씨가 진행한다고 한다.
당시의 난 초등학생이었지만 상당히 조숙했던 것 같다.
보통 11살 12살 때는,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부모님께 혼이 나곤 하는데
나는 엄마 아빠한테 방에 들어가 잔다고 말하고
침대에 누워서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몰래몰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밤 10시가 되면 시그널 음악이 흐르면서
DJ가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작가가 멋지게 써준
오프닝 멘트를 읽고, 음악을 들려주고
그다음엔 사람들이 보낸 사연을 읽고,
다시 음악을 들려주는 구성이었다.
또 매일 각기 다른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인기 있는 가수나 배우 같은 연예인들이 나와서
사연을 읽어주기도 하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낼 때
지금은 이메일로 쉽게 보낼 수 있지만,
그때는 이메일이 없었기 때문에
손글씨로 엽서나 편지를 적어서
라디오 방송의 담당자 앞으로 보내야 했다.
그랬던 라디오 방송이 점점 시대가 변하면서
형태도 많이 변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진행자의 얼굴이 보이는 프로그램이 많고,
거의 라이브 스트리밍에 가까워졌다.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다시 들을 수도 있고,
실시간 채팅을 통해 청취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다시 듣기라는 게 없어서
프로그램 시간을 놓치면 끝이었다.
한 번 놓치면 그대로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애정이 있었고,
그걸 듣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었다.
당시에는 즐길거리가 지금만큼 풍족하지도 않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정보를 전달해 주는 소통 창구였다.
그래서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는 게
하루의 일과 중 하나라고 할까,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학교, 학원, 사는 동네, 그리고 가족밖에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내게도,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었다.
나는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들으며
외국 가수들과 외국 음악을 접했고
'별이 빛나는 밤에'나 '텐텐클럽'을 들으면서
바깥세상 사람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려서 용돈을 모아
가수들의 음반을 산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음반 가게에 들어가 테이프나 CD를 산다는 건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문방구에서 아무것도 녹음되어 있지 않은
공테이프라는 걸 사다가 라디오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나 유행가가 나오면
빨간색 녹음 버튼을 눌러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나만의 좋아하는 노래들을 담고,
그게 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되었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검색하면
바로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바라고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
노래 앞부분의 인트로를 1초라도 놓치기 싫어서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누르곤 했다.
DJ의 멘트가 길어져서 인트로와 겹치기라도 할 땐
DJ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
그리고 공개 방송이라는 게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었나 한 달에 한 번이었나,
방송국의 공개홀에서 열리는 조그만 콘서트 같은
이벤트였다. 그때는 방청객도 모집을 했는데,
당시의 나는 겨우 11살, 12살이라 부모님 없이
혼자서 보러 갈 수도 없고, 그래서 거기에 가는
언니들을 참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또 1년에 한두 번은 잼콘서트라는 걸 했는데
서로 다른 밴드의 멤버나 가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스페셜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펼쳤다.
원래는 다른 팀이거나 솔로 가수인데 드럼, 기타,
키보드, 보컬 같은 포지션을 맡아
함께 연주도하고 노래도 부르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다.
요즘 말로 하면, "이게 된다고?" 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면
꼭 보러 가야지라고 결심했었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가슴 한 켠에
몽글몽글한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나도 유튜브를 통해 스스로 PD, 작가, DJ가 되어,
소소한 1인 라디오를 꾸려보기로 했다.
처음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가면서,
훗날 구독자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하고
또 댓글 등을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는 그런 채널을 되었으면 한다.
잠들기 전에 틀어놓고 들으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 목소리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S6HExwvaNWI
내가 좋아하고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70세가 넘으신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이 있는데.
3년 전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박막례 할머니가
구독자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나눠주신 적이 있다.
"남의 박자는 틀린 것이여. 니 박자가 맞는 것이여.
남의 박자에 맞춰서 춤출 생각하지 말고,
니 박자대로 니 하고 싶은 대로 가다 보면
니 장단에 맞춰서 춤추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들 거여."
나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그러면 없던 힘도 생길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남의 박자에 맞춰가지 않고,
느리고 더디더라도 내 박자를 울려보려 한다.
2024년 9월 하루의 소소한 일상
제 목소리를 통해 이 에피소드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https://youtu.be/g-o3FBdW5ig?si=3RutATNhwbO84A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