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소소한 일상
누구나 생일이면 특별한 음식을 먹곤 한다.
내가 생일에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먹은 뼈해장국.
엄마가 내게 생일에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셨는데
8살 여자애가 보통은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뼈해장국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거다.
당시의 나는 손으로 뼈를 잡고 고기를 뜯어먹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나 보다.
매년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뭘 먹었는지 잊어버린 날이 훨씬 많지만
그 시절의 내가 옐로우 그린의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어 리본을 매고는
우리 네 식구가 동네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허름한 뼈해장국 집에 가서
뼈를 쪽쪽 빨아먹으며 맛있게 먹었던 일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생일에 관한 에피소드.
어떤 커플이 헤어지려고 하는데,
일주일 후가 그들 중 한 사람의 생일이었나 보다.
그래서 생일이 다가오는 쪽에서는 헤어지는 거엔
동의하지만 일주일만 연기하자고,
본인 생일이 지난 후에 헤어지자고 했다는 거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니,
이별을 연기하자고 한 사람에게 동의하는 경우,
그 사람은 파트너의 생일에 선물도 하고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자기 생일에도 선물을 받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이해할 수 있다고.
반면, 감정이 식어서 헤어지겠다는데
생일이 뭐가 대수냐, 기다릴 수 없다,
선물이 목적이라면 너무 계산적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들도 달렸다.
나는 그걸 보며, 일주일만 연기하자는 이유가
어쩌면 SNS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사귀고 있었다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보다도 자기 생일날
SNS에 연인이 없는 사진을 올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인데, 그땐 내가 직장에 다녔고
남자친구도 있었고, 생일 파티도 여러 번 했다.
가족, 직장 동료, 남자친구와 단둘이서도 축하하고,
또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하고
그렇게 생일파티를 그 주에 서너 번씩 했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SNS에 자랑하듯이
예쁘게 꾸며서 올렸다.
"나 이렇게 즐겁게 잘 살고 있어"
"주변에 축하해 주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지"
라는 걸 SNS를 통해 과시했던 거다.
그땐 그저 마냥 즐겼다.
그런데 이듬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가 된 후,
게다가 남자친구랑도 헤어지고
만나던 사람이 아무도 없던 시기였는데
마침 생일이 다가오니 정말 고민이 되는 거다.
"올해는 내 생일 어떡하지?"
"만약 사람들이 내 SNS를 보면서
올해는 왜 생일을 조용하게 보내지?"
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싶은 거다.
물론 남의 SNS를 보면서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당시의 나는 괜히 그런 마음이 들면서
스스로가 약간 초라하게 느껴지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거다.
"아~ 올해는 내 생일 어떻게 보내지?"
그래서 내가 취한 방법은,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는
친구들의 생일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는데
사람들이 내 생일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가도록
알람 설정을 다 해제해 버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 친구의 경우는 오히려 나와 반대였다.
그 친구가 5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한 달인가 후에 생일을 맞았는데
그 해에 유달리 생일 파티를 엄청 공들여서
화려하게 계획하는 거다.
파티룸을 빌리고, 커스텀 케이크와 샴페인을 준비하고
드레스코드도 화이트로 지정해서 초대한 사람들도
다들 멋진 하얀 옷을 입고 오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SNS에 올렸다.
그 친구가 말하길, 헤어진 남자친구와
그 공통 지인들에게
"그 애랑 헤어졌어도 나는 지금 이렇게 건재하다",
"나는 보다시피 멋지게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축하받고 있다"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단다.
돌이켜보니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가장 활발하게 했던 시기는
2019년인데, 나 역시 헤어진 사람에게
여전히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고
이런 나를 떠난 걸 후회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거다.
"내가 이렇게 멋지게 잘 살고 있다"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은 건,
결국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
한번 떠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SNS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닌데,
SNS에 공을 들이면 뭐 하나......
한편 SNS가 우리의 삶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멋진 나, 즐겁게 사는 나를 연출하고
가짜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서
내 SNS를 어떻게 장식할 수 있는지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 되는 거다.
식당을 고를 때에는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인가 하는
식당의 분위기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만약 지난번에 방문해서 이미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면, 그곳은 거르는 거다.
음식을 선택할 때도 이미 먹어본 적이 있다면
아무리 맛있어도 다른 음식을 고른다.
왜냐하면 그 음식은 이미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적이 있으니까. 즉, 내가 먹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게 아니라
"아직 SNS에 안 올린 게 뭐가 있지?"
라는 게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나 역시 생활이 점차 SNS 위주로 돌아가던
시기가 있었다. 어딜 가든, 뭘 먹든, 뭘 하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마치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내 생활을 중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2020년에 코로나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SNS를 디톡스 하게 되었다.
또한 헤어진 사람에 대한 미련이 점점 옅어져 가면서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코로나 이후로는 조금 귀찮아졌다고 할까?
지금은 SNS에 사진 자체를 많이 안 올리게 되었다.
어차피 사진을 잘 안 올리니
오히려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맛있으면 여러 번 먹어도 괜찮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SNS와 멀어지니
오히려 내 자신이 원하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진 것 같다.
2024년 9월 하루의 소소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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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6jKJkmBYws?si=082lgqjiWcLUmJ3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