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90년대 비디오 키드
1994년에 개봉한 영화 '쇼생크 탈출'.
중학생 때 비디오로만 봤던 이 작품이
올해 개봉 30주년을 기념하여
마침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길래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고 왔다.
90년대는 지금 같은 OTT 시대가 아니었다.
동네나 아파트 단지의 상가마다
마치 지금의 편의점처럼
비디오 가게라고 부르던 대여점이 있었고
집집마다 TV와 함께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된 비디오 플레이어에
VHS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테이프에 기록된 영상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출력된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어떤 작품이 플랫폼에 공개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동시에 하나의 영상을 시청할 수가 있다.
하지만 예전의 아날로그 시대에는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돈을 내고
영화가 담긴 테이프를 하나씩 빌려와야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누군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먼저 빌려가면
나는 그 사람이 반납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거다.
지금과는 다르게 영화가 필름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건 안에 담겨 있어서
그걸 손에 넣지 않으면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도서관 같은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젊은 나이에 은행 부지점장에 오르는 주인공 앤디.
그런데 바람을 피우던 자신의 부인과
그 정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두 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처음엔 온갖 괴롭힘을 당하지만,
점차 숫자에 밝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동료 죄수들을 비롯하여 교도소장의 신임을 얻고
쇼생크 감옥을 조금씩 인간다운 곳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한편 교도소 소장은 앤디를 이용해
탈세와 돈세탁 같은 비리를 저지르는데
가상인물의 계좌를 만들어 막대한 비자금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앤디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옥죄는 소장.
하지만 결코 자유에 대한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앤디는
결국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탈옥에 성공하고
악랄했던 교도소장은 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소소한 일들,
때로는 잔혹한 사건들을 보여 주고
그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해 준다.
앤디가 수감되던 첫날, 선배 수감자들은, 신입 중에
누가 제일 먼저 울 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하는데
그들 중 헤이우드는 내기에서 이기려고
마음 약한 1 명의 신입 수감자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겁을 먹게 만들어
그가 울부짖으며 난동을 피우도록 부추긴다.
결국 그 사람은 본보기로 교도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의무실로 실려갔다.
하지만 그날따라 의무실에는 의사가 없어서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
나는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헤이우드가 그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어두운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죽을 줄 몰랐는데,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저 내기에서 이기려고 했던 것뿐인데,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만든 거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에게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순간 다음 표적은 자기가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죄수들이 교도소의 지붕 보수를 마치고 나서
석양을 등지고 앉아 다 같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 중에 하나로 꼽는다.
나도 영화를 보며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맥주는 앤디가 낸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인데
그는 자신에게 맥주를 권하는 동료에게
술을 끊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앤디는 왜 남들과 달리
맥주를 마시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아내가 살해당하던 날,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함이 입증되지 못했다고
후회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감옥에서 무사히 탈출할 때까지
술은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던 걸까?
그렇다면 그는 탈출하고 나서는 축배를 들었을지,
나중에 레드와 재회했을 때 그 둘은 맥주를 마시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을지 궁금해졌다.
한편, 50년을 감옥에서 보낸 브룩스 할아버지는
감옥 생활에 길들여진 나머지
오히려 석방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동료의 목을 찌르면 쇼생크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지 않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결국 가석방을 받아 출소하게 되는데,
50년 전과 너무나 달라져버린 세상에 적응을 못하고
가족도 친구도 없던 그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는 마음이 참 쓸쓸해졌다.
그는 차라리 주변에 동료들이 있는 쇼생크에 남아
규칙적인 생활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이
훨씬 덜 외로웠을 텐데.
그에게는 오히려 가석방된 환경이
또 다른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반대로, 40년 만에 가석방되어 나오는 레드는
브룩스와는 대조되는 선택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포자기해 버린 브룩스와는 달리
마음속에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었고
그 희망은 결국 그를 자유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열심히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서둘러 죽어 갈 것인가"
영화에 나오는 레드의 독백인데
이 대사가 레드와 브룩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말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다시 주인공 앤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앤디는 몇 년에 걸쳐 주정부에 끈질기게 편지를 써서,
교도소 내의 도서관 설립 기금과
몇 장의 음반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그는 과감하게도 재소자 모두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교도관을 따돌리고 방송실 문을 잠가버린 뒤,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오페라곡을 전 교도소에 울려 퍼지게 만든다.
이 장면은 늘 반듯하던
그가 보여준 첫 번째 반항이었다.
앤디는 음악을 통해서
쇼생크 안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레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앤디는 반항에 대한 징계를 받아
독방에 2주간 갇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갇혀 있는 동안
모차르트를 마음껏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들었냐고 동료들이 묻자,
음악은 머리와 마음속에 있다고 대답한다.
한 번 들은 음악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런 앤디의 특별한 점은,
항상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는 비록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능력과 그 능력을 이용해서 얻은 보상들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동원해서
교도관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차가운 맥주를 얻었고
그걸 다시 동료들에게 다 나눠주면서
더 큰 만족을 얻는 것 같았다.
심지어 다른 교도소의 교도관들까지도
앤디에게 세금신고를 맡기러 찾아오도록 만든다.
또한 주정부로부터 지원금도 얻어내,
교도소 내의 도서관에 많은 중고책과 음반도 들여오고
그것뿐만 아니라 검정고시반도 개설해서
젊은 죄수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교도소의 최고 권력자인
노튼소장의 비자금 관리까지 맡게 된다.
그러면서 앤디도 교도소 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게 된다. 그렇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제공하면서
그 안에서 신뢰를 얻게 되고, 그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
결국은 앤디가 교도소 밖으로 탈출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어 준다.
이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접어든다.
장대비와 함께 천둥벼락이 내리치던 어느 날 밤,
앤디는 결국 500미터가 넘는 하수도를 기어나와
탈출에 성공한다.
오물 범벅이 되어 버린 자신을 흠뻑 씻어주는
장대비를 두 팔 벌려 맞는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드디어 해냈구나! 고생했어, 잘했어!
그런 마음이 들면서 나 또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노튼소장은 비겁한 최후를 맞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마음에 가장 울림을 주었던 대사를 꼽자면
앤디가 탈출한 뒤,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레드의 독백이다.
"새장 안에 갇혀서 살 수 없는 새들이 있다
그러기엔 그 깃털들이 너무나 찬란하다
그런 새들에게 비상하는 기쁨을 빼앗는 것은 죄악이다"
누구나 마음 한켠엔,
새장에 갇혀서 살 수 없는 새 한 마리쯤은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
그 새를 소중히 지키고 기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는 그 새들이 찬란한 깃털을 퍼덕이며
비상하는 그날까지.
2024년 9월 하루의 소소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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