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가 보는 불닭볶음면 리콜 소동
불닭볶음면의 세계적 유행의 비결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김치도 못 먹을 정도로 아예 매운 음식을 입에도 못 대는 수준은 아니지만 매운 음식을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엄청 잘 먹진 않는다. 나한테는 신라면도 맵게 느껴지고, 매운 닭발 같은 음식도 즐겨 먹지 않는다.
한국에서 제일 매운 라면은 틈새라면이라고 들었는데 도전해 볼 엄두도 못 내겠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매운 음식을 잘 못먹는 사람을 가리켜, 요새 말로는 세 글자로 줄여서 '맵찔이'라고 한다.
맵다와 찌질한 사람을 합쳐서 맵찔이라고 부르는 건데
"나 매운 음식 잘 못 먹어"라고 말하기보다
"나 맵찔이야" 이렇게 다섯 글자로 줄여 말하면
그 뜻이 다 통한다고 한다. 내가 바로 그 맵찔이다.
하지만 이건 그 대상을 낮춰 부르는 비하 표현일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는 건 주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맵부심'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이건 '맵다'와 '자부심'이 합쳐진 말인데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들이 과시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나처럼 맵찔이의 시선으로 보면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
그런데 매운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흐르는 건 캡사이신이라는 물질이 일시적으로 코 점막을 자극하고
혈관이 팽창해서 콧물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캡사이신 때문에 교감신경이 흥분되고 땀샘을
자극해서 땀도 흐른다.
게다가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도 아프지만 귀도 아프지 않나?
나는 귓속까지 찌릿찌릿하게 아파오는 감각을 느낀다.
그래서 매운맛은 사실 미각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통각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무척 맵거나 무척 달거나 한 극단적인 음식들이 등장해서 유행으로 번졌다가 사그라들거나 하는데 엽기떡볶이도 처음에 등장했을 땐 굉장히 센세이션 했다.
그다음엔 신전떡볶이가 나오고 한때는 매운 등갈비나 불짬뽕도 유행이었다.
지금은 닭발이나 마라탕이 맵기 레벨을 선택할 수 있으면서도 스트레스 푸는 음식으로 인기가 많다.
그런데 지난 6월에는 덴마크 정부가 한국의 불닭볶음면 일부 제품을 리콜했다.
처음에는 오리지널 불닭볶음면이 리콜 대상인 줄 알고 너무 오버액션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3배 매운 핵 불닭볶음면', '2배 매운 핵 불닭볶음면' 그리고 '불닭볶음탕면', 이렇게 3가지 제품이 그 대상이라고 한다.
이유는 이들 제품에 캡사이신 성분이 지나치게 많아서 어린이나 노약자 등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거다.
즉, 복통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평소에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내 일본인 친구도 10년 전에, 한국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오리지널 불닭볶음면을 먹고 장염에 걸려서 이틀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불닭볶음면의 제조사인 삼양의 악재가 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번 일이 사람들의 반발심을 자극했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얼마나 맵길래 덴마크 정부가 나서서 리콜하느냐며 오히려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홍보 효과가 일어난 거다.
구글의 검색 트렌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불닭볶음면의 검색량이 덴마크의 리콜 발표 직후인 6월 12일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게다가 BBC, AP 통신 등의 외신들이 앞다퉈 해당 내용을 기사화하고, 일부 외신에서는 기자들이 직접 불닭볶음면을 시식하면서 괴로워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3배 매운맛을 먹은 기자의 표현이 재밌었는데,
잠깐 소개하자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영혼이 몸을 떠나던 순간만은 선명히 기억난다.
유체이탈인지 시간여행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입과 몸처럼 세상이 불타고 있는 아포칼립스를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오히려 불닭볶음면의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없어서 못 판다는 뉴스를 봤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드디어 덴마크 정부가 한 달 만에 '3배 매운 핵 불닭볶음면'을 제외한 나머지 두 제품의 리콜 조치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지표로는 주식을 확인해야 한다.
역시 몇 달 전부터 삼양식품의 주가가 엄청 올랐다.
올해 3월에만 해도 1 주에 20만 원을 밑돌았었는데,
4월부터 급상승하더니 덴마크의 리콜 사태로 언론에 오르내리던 6월 18일에는 무려 71만 2천원이라는 상한가를 찍었다. 3달 만에 350% 가까이 오른 거다.
이런 걸 요새 말로는 '떡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라면 업계에서는 만년 3위였던 삼양이 드디어 농심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50만원 밑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이제는 삼성, LG와 같은 가전 제품을 비롯해 K-pop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문화산업뿐만 아니라 라면 같은 식품산업까지도 인구수가 적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한국기업이 등장했다.
그런데 삼양식품은 왜 매운맛에 하필이면 불닭이라는 메뉴를 선정했을까?
내 기억엔 2000년대 초반에 '불닭'이라는 메뉴가 한국에서 엄청 유행을 했었다.
그전까지는 매운 음식이라고 하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맛을 낸 음식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캡사이신 소스로 맛을 낸 음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를 풍미했던 메뉴가 불닭이었고, 동네 여기저기에 불닭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직화로 맵게 볶아낸 닭고기를 동그란 철판에 담아서 나오는데,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계란찜 또는 누룽지탕이랑 같이 먹곤 했었다.
그때도 굉장히 중독성 있는 음식이라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마치 지금의 닭발 같은 포지션이라고 할까? 나도 친구들과 많이 갔던 추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홍초불닭이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였는데, 2010년도에 접어들면서 유행이 사그라들어서
지금은 불닭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홍초불닭 본점은 아직도 신촌에 남아있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은 가서 먹어보고 싶다.
내가 불닭볶음면을 처음 접한 시기는 2012년쯤?
엄청 매운 라면이 새로 나왔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한번 먹어봤는데 입술이 퉁퉁 붓고
눈물 콧물이 다 흐르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매운 라면이라고 하면 신라면처럼 국물이 매운 일반적인 라면이거나 비빔면처럼 차갑게 식힌 면에 매운 소스를 끼얹어 비벼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 불닭볶음면은 국물이 없이 매운 소스를 면과 함께 볶아서 먹는 거라서 따뜻하긴 한데 더 맵게 느껴지는 거다. 당시에는 신선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 내에서 엄청 매운 라면으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는 정도였는데, 지금처럼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진 계기는 역시 유튜브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16년쯤, '영국 남자'라고 하는 구독자 수가 600만 명이 넘는 대형 유튜브 채널에서, 영국인들한테 불닭볶음면을 먹게 하고 매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을 살펴보는 영상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만 해도 무척 신선하고 재밌었다. 나도 물론 즐겨봤었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통해 챌린지하는 문화가 퍼지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불닭볶음면을 먹어보는 리액션 영상을 찍어올리는 트렌드가 생긴 거다.
그래서 점차 시청자 입장에서도 "도대체 얼마나 맵길래 저러는 거지?" 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고,
"나도 한번 먹어볼까?"로 이어졌다.
파티에서 게임의 벌칙으로 불닭볶음면 먹기를 하는 영상을 본 적도 있다.
이렇게 불닭볶음면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배경으로는 단순히 맛있어서, 중독성이 있는 음식이라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동시에 재미를 추구할 수 있으면서 유튜브나 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확산력이 합쳐진 결과인 것 같다.
"나도 이거 먹어봤어!"라는 걸 인증할 만한 세계적인 아이템이 된 거다.
불닭볶음면을 영어로는 '코리안 스파이시 치킨누들' 또는 '불닭라멘'이라고 하던데, 너무 기니까 줄여서
그냥 '삼양'이라고 부르는 외국인들도 있다.
그만큼 지금은 삼양 식품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효자상품이 되었다.
또 치즈맛, 짜장맛처럼 여러가지 버전으로도 출시되었는데, 오리지널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게 '까르보 불닭'이라고 한다. 핑크색 봉지에 들어있는 제품인데 이참에 나도 한번 먹어봤다.
이 까르보 불닭은 '까르보나라'에서 착안을 한 거라서 면도 파스타면을 의식해 두껍고 납작한 모양에, 불닭 소스와 더불어 치즈가루가 들어있다.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잘 믹스하면 주황빛이 도는 걸쭉한 소스가 된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고소한 치즈가루가 매운 소스를 약간 중화시켜 주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역시 나한텐 맵긴 매웠다. 그래서 후라이드 치킨을 곁들여 먹었다. 불닭볶음면 한 입 먹고, 후라이드 치킨을 한 입 먹고, 또 불닭볶음면 한 입 먹고, 후라이드 치킨 한 입 먹고...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신촌에 나가 홍초불닭이나 가볼까...
제 목소리를 통해 이 에피소드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https://youtu.be/WNwMPe5sFMg?si=xmoaXVIdoHgfb8L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