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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Dec 26. 2023

하루를 살더라도

어리석은 존재에게



  법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법회 시작 2분 전까지 망설이다가 그 짧은 1분 사이에 결심했다. 누워서 쉬자. 반찬과 저녁을 준비한다고 뻐근했던 허리가 풀리고 기분 좋게 잠이 오니, 법회 참가 후 맛보는 개운함보다 세속의 혼곤함을 풀어줄 휴식이 더 달가웠다. 오래 앉아 있기가 어렵기에 만약 오늘 법문이 즉문즉설이었다면 화상 화면을 끄고 누워서라도 듣겠으나, 오늘은 이 지역 지회의 전 인원이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는 자리인지라 화면을 끄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쯤 되면 법회를 참가하기 싫은 걸지도.



  선택에 대해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했다. 관련 동영상으로 10여 년도 더 전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이 영상을 보았다가는 쓸모도 없는 눈물을 또 한 바가지 쏟겠구나 싶었다. 꼭 남편을 출근시킨 밤이면 꺽꺽거리며 울게 만드는 영상이 뜬다니까. 나는 그 영상을 미리 보기도 보지 않으려 재빨리 넘겼지만 그것만큼 꼭 봐야만 하겠는 영상도 없어 보였다. 나중에 볼 영상으로 추가만 해놓자는 요량으로 스크롤을 올려 다시 그 영상을 찾았다.



  장애를 앓고 있는 부부가 주인공인 영상. 아내는 뇌병변 1급이고 남편은 지체장애 4급이었다. 아내 되는 사람은  두 팔을 못 썼고 말은 어눌했지만 자기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이제 며칠 뒤면 아기가 곧 태어날 만삭의 임산부였다. 둥그렇게 솟아오른 배.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그녀가 만삭이라 얼마나 힘들지가 와닿았다. 비장애인조차도 만삭이 되면 치골통에 요통에 걷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게 되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안으로 말리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에게 만삭의 무게는 얼마나 땅이 꺼지도록 고단할지.



  그녀가 장애인이고 단지 사는 처지가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운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동그란 배는 나의 배와 똑같았다. 엄마이기 때문에 배 속 자식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그 마음도 꼭 같았다. 경제적인 앞날을 불안해하며 남편과 이야기 나누는 마음도 다를 바가 없었다. 왜 그런 처지에 아기까지 가지려고 해서 태어날 아기를 힘들게 하느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반반 닮은 아기가 보고 싶은 마음은 너 나 할 것 없이 같지 않을까. 동정(同情). 내 일과 다를 바 없었기에 눈물이 났다.



  그녀의 모습에 나의 알량해진 존재가 부끄러웠다. 그녀가 처한 조건보다 내 조건이 낫다는 것은 자명한데,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도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내 주변 안위만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나은 처지가 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도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종종거리며 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미워했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원망했다. 내가 누군가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처지라면, 하나라도 더 나은 방식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살수록 어리석어지는구나.



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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