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
진정한 육아의 막이 올랐다. 친정에서의 산후조리를 끝마치고 돌아온 우리 집. 이젠 둘이 아니라 셋이다. 우리 부부는 다시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남편은 그나마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약간의 감기 몸살을 앓고 일어났다. 아마 애월이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름의 애를 쓰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친정 부모님 덕분에 얼마나 편하게 육아를 했던가 그 시절이 벌써 그립다.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 둘이 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작년 4분기 출산율이 0.6을 찍으면서 대한민국 소멸론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선진국의 출산율 추세가 갈수록 감소하는 경향이라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감소 속도가 빨라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뭐든 빨리빨리라지만 이런 것까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을 종합해 생각하면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한 편이 아닌가 한다. 절대 둔감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전반적인 기질도 저출산에 한몫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걸 바꿀 수는 없으니 좋은 방향으로 쓰이도록 하는 수밖에.
총선을 앞두고도 딱히 이렇다 할 저출산 대책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인구가 없어져 이대로 대한민국이 소멸한다 하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이나 힘들지 지구에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인연이 되어 태어난 나의 나라를 사랑하고, 내가 무정부주의자도 아니며, 우리의 아이들이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뭐,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소멸을 면치 못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받아들여야겠지만.
많은 사람이 출산하도록 해야 저출산 대책일까. 출산이 무슨 물 마시듯 쉬운 일이라고 그걸 하라 마라 할 수 있을까. 하고 말고는 개인들이 결정할 일이다. 대신 부모가 원하는 것 말고 아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이제 막 태어난 아기라면(또는 아동이라면), 아기의 몸이지만 다 자란 어른으로서의 기억, 경험, 뇌 등등 전부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순간 무엇을 가장 원할까?
1. 아기인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기울여 줄 수 있기를
2. 부모가 (되도록) 싸우지 않기를
─ 이 두 가지가 아기에게는 전부이자 최고 아닐까?
충분히 괜찮은(good enough) 부모가 기본적으로 많기야 하겠지만 요즘 아동 학대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가 왕왕 보인다. 몇 해 전 말을 꺼내기만 해도 가슴 아픈 정인이 사건이 떠오른다. 그걸 생각하면 부모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비단 부부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입양할 때도) 부모가 될 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주 어렵게(일주일에 한 번씩 40주 내내). 낳아 보면 부모 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차피 잘 안 낳는 요즘, 내실을 다진다 생각하고 부모 교육을 강제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준비된 부모 아래서 태어난다면 아기에게는 좀 더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신청을 하면 집으로 산과/육아/정신 건강 전문 간호사가 언제든 방문하는 서비스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제일 좋다고 느꼈던 정책 중 하나가 <서울 아기 첫걸음 사업>이었다. 보건소에 간단히 신청만 하면 아기의 발달 상태를 체크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방문한다. 그리고 그간 육아를 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속시원히 물어볼 수 있었다. 소아과 가서 물어봐도 되지만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뿐더러, 뭘 물어보고 싶어도 진료만 후다닥 보고 나오게 되는 분위기에 의사 선생님에게는 이런저런 질문하기가 어려웠기에 간호사 방문 제도가 참 좋았다. 이 제도가 좀 더 발전해서 아동 학대가 일어나는 가정을 선발견 한다든지, 위태로운 가정을 지원한다든지, 그러면 부모나 아이에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기는 일반적으로 자기 부모와 함께 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버려지지 않고, 자기 부모 밑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라는 것이 아기에게는 최고일 것이리라. 그러려면 부모에게 아기와 함께 할 시간이 꼭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부분이 보완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지겹도록 나오는 주장이어서 내 글에서까지 반복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책 입안자들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듣지를 않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러니 들릴 때까지 말할 수밖에. 임신한 여성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 해주기를, 여성이든 남성이든 육아 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도록 해주기를, 아기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도록 늦은 출근과 조기 퇴근을 지원해 주길. 그리고 육아를 해보니 배우자(대부분은 남편일 것)에게도 아기 출생 직후부터 100일 간 유급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제일 힘든 시간이라 싸우기도 쉬운 때인데, 손 하나가 무섭다고, 한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이 하면 그래도 괜찮더라.
만약 정부라는 것이 강제할 수 있는 힘(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일견 위험한 발상이겠으나) 나는 그 힘을 이런 데 쓸 것 같은데 말이다. 육아 휴직도 마음대로 못 써, 늦은 출근 조기 퇴근은 먼 나라 이야기. 애 낳아서 키우는 것 자체도 힘들어서 고민하는 마당에 환경조차 임신과 출산, 양육에 호의적이지 않은데 누가 쉽게 낳아 기르려고 할까. 아니면 아직도 나라가 정신을 못 차려서 국민들을 개돼지쯤으로 여기고 「지원 안 해줘도 낳을 사람은 낳는다」는 식으로 개인이 알아서 견디라고 배 째라는 듯 군다면…. 발등에 불붙었는데 아무래도 뜨겁지 않은 모양이지.
좀 더 나아가서 개인적으로는, 투표권 없는 아이가 있는 집(태아를 포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태아에게는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에는 그 수만큼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부모들이 양육하기 좋은 정책을 내는 정치인들에게 투표할 것이고, 그 결과로 이 사회는 아이가 살기 좋은 곳으로 시나브로 바뀌어 갈 것이란 판단이 든다. 아이와 그 부모가 살기 좋은 나라에 응당 미래가 있지 않을까. 투표권 연령을 낮추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24.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