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에세이를 읽고....
나는 1남 5녀 중 셋째 딸이다. 나는 그리 귀하게 자라지 못했다. 가난한 집안은 날 일찍 어른이 되게 했다. 어리광은 내가 해보지 못한 많은 일 중의 하나이다. 부모님이 은연중 입버릇처럼‘돈 없다. 돈 없다.’ 하니 알아서 무엇을 더 요구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딸들에게 고등학교까지만 보내 주신다고 늘 말했다. 나는 친구들처럼 대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내내 전교 10등 안에 들었던 큰언니도 상고로 보내 취업을 시키는데, 나 따위가 대학 공부를 시켜달라 말은 절대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난 언니들과 같은 상고를 입학했고, 졸업 전 취업을 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끔은 부모님이 내게 조금만 더 신경 써 줬으면, 지금 사는 모습이 다를 것 같은 생각에 억울함과 서운함이 든다.
25살, 내 배 속에 아이가 생겨 급히 남편과 결혼했다. 세상 모든 일은 처음엔 다 어렵고 힘들다. 그중 제일은 아이를 기르는 일이다.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어린 내게는 더욱더. 하지만 첫 아이를 낳고 다시 19개월 뒤, 둘째를 낳으면서 힘들다고 투정할 겨를도 없었다.
그 시절 아이는 내 생활의 중심으로 모든 에너지를 두 아이에게 쏟았다. 절대 어린 시절 나처럼 돈 때문에 눈치 보며 서럽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부모에게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 지지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주어 훌륭하게 잘 키워내고 싶었다.
많은 전집을 사서 읽혔고, 유명한 몬테소리, 프뢰벨 교구도 구입해 방문 선생님을 불러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찍 한글도 깨치게 했다. 피아노, 태권도, 미술, 논술 등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다 가르쳤다. 아이들은 내 자부심이었다. 마침 똘똘한 둘째는 뭐든 잘했다.
하지만 첫째는 행동과 말이 느리더니 학습도 늦어 날 애태웠다. 그럴 때면 첫째에게 조바심과 불안감이 들었다. 참 많이도 첫째에게 화를 내며 다그치고 짜증을 냈다. 어떻게 가르쳤는데 모를 수 있냐며.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수업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금 느려도 평범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고 믿었는데, 괜찮다고 여겼는데, 점점 주변에서 첫째가 이상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봄, 첫째는 주의력 결핍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그때 철없어 온전하지 못한 아이가 하필 내게 온 것 같아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창피하지만, 아이가 부끄럽다는 마음까지도 들었다.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린 걸까? 내가 자라온 환경에 비하면 아이는 너무 풍족하게 자랐다. 그리고 내가 관심도 듬뿍 주었는데. 아이의 증세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신과에서 약만 타 먹으면 첫째가 다 괜찮아질 줄만 알았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짜놓은 틀 안에서 학습적인 것만 강조하며 아이를 키웠다.
결국 묵묵히 내 말만 잘 따르던 첫째는 17살이 되어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불편한 감정들이 폭발했다. 공황장애와 자해를 시작했다. 아이는 고1 가을부터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내 몸이 조각조각 찢어져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내 아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벌을 받은 것이다. 자식을 내 마음대로 좌우지했던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을.
내가 먼저 변해야만 했다. 수많은 강연과 책, 유튜브를 통해 첫째와 내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때 나타난 책이 김창완 아저씨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였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들렸던 창완 아저씨 목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따뜻한 위로의 글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그래요. 그래, 뭐 어때요? 괜찮아요.’ 하며 김창완 아저씨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해 주는 것 같고 편안했다.
덕분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감사함으로 여기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잘 그린 동그라미만 동그라미가 아닌 것처럼, 아이도 세상에 태어난 소중한 한 사람인 것이다. 아이는 지금 자신의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 내는 중이다. 난 옆에서 응원하고 다정히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 곁에 아이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힘들면 말하지 않고 혼자 자해부터 했던 아이는 오늘 밤은 자신 옆에서 함께 자자고 부탁한다. 우린 같이 누워서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들어보면 아직도 아이의 마음은 한없이 여리다.
어느 날, 새 운동화를 사주었더니 다 큰 줄 알았던 첫째가 여태 운동화 끈을 제대로 묶을 줄 몰랐다. 예전 같으면 한숨과 함께 핀잔을 주며 아직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한마디 했을 일이었다. 이젠 천천히 첫째에게 가르쳐 준다. 혼자 하는 아이를 보며, 저절로 입에서 ‘잘하네! 우리 아들!’하며 칭찬이 나왔다.
내가 해준 돼지고기볶음을 맛있게 먹는 아들,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 줄거리 얘기해 주는 아들, 만나는 친구들 얘기, 연예인 얘기. 이젠 첫째와 일상이 꽤 편안하고 행복하다.
세상사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우회 도로가 있고 왕도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던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오늘도 난, 아이와 함께 인생의 우회 도로를 돌아가며, 풍경도 보고 언덕도 넘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제10회 화성시립도서관 독서감상문 공모전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