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아Q정전』을 읽고
『아Q정전』(1921~1922) <열린책들/김태성옮김>
- 줄거리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농촌 하층민 아Q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 허세와 정신 승리로 하루를 버텼다. 아Q는 가정과 직업이 없이 구토사에서 기거하며, 세력가의 아들을 욕했다가 맞고, 평소 싫어하던 사람에게도 시비를 걸다 맞으면서 마을의 놀림감을 살았다. 그러다 혁명 기간을 틈타 혁명당원이 되려 하지만, 결국 하지도 않은 강도죄로 총살당한다.
- 정신승리법
아Q는 누군가에게 맞아도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으며 정신적으로 자기를 위로했다. 루쉰은 정신승리법으로 아Q의 무력감과 노예 근성을 비판하며,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는 아Q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 역사적·사회적 의의
아Q는 당시 중국인의 특징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은유적 상징으로, 중국인의 국민성을 부정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더 나은 중국인이 되라는 자극이 되길 원했다. 루쉰은 신해혁명 전후의 농촌을 배경으로 이 작품을 통해 당시 혁명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그렸으며, 신해혁명에 대한 실망을 나타냈다. 오늘날 현대 중국어로‘아Q 정신’은 현실에 맞서지 않고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정신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1장 서(序)
133쪽 사람은 글을 통해 전해지고 글은 사람에 의해 전해진다는 것이다.
2장 승리의 기록
143쪽 아Q는 또 자신이 머리에 난 부스럼 자국이 평범한 부스럼 자국이 아니라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인 듯 행세했다.
144쪽 <내가 아들놈에게 얻어 맞은 걸로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말이 아니야…….>
145쪽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경멸하고 낮추는 데는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경멸하고 스스로를 낮춘다>는 말을 빼면 <으뜸>만 남았다. / 아Q는 이런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적들에 대한 원망을 극복하고 난 뒤에는 신나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 잔 마셨다.
148쪽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힘껏 두 차례 연달아 때렸다. 얼얼하게 아파 왔다. 자기 뺨을 때리고 나서야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인 것 같았다. 얼마 후 자신이 남을 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아직 얼얼하긴 했지만 마음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3장 속(續) 승리의 기록
150쪽 억지로라도 짜맞춰 말하자면 어쩌면 아Q가 자신이 자오 나리의 친척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비록 얻어맞긴 했지만 사람들은 혹시 정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어쨌든 약간은 존경해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 것인지도 몰랐다.
153쪽 아Q의 기억으로 아마도 이것이 평생 처음으로 당한 굴욕이었을 것이다. 왕후는 털이 얼굴을 덮고 있다는 결점 때문에 그때까지 줄곧 아Q에게 놀림 받기만 했지 아Q를 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54쪽 그를 <가짜 양놈>이라고 불렀다. <외국과 내통하는 놈>이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아Q가 <몹시 싫어하고 단호하게 배척하는> 것은 그의 가짜 변발이었다. 변발이 가짜라면 사람 노릇을 할 자격도 없었다. 그의 아내도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훌륭한 여자가 아니었다.
155쪽 아Q의 기억에 따르면 이것이 아마 평생 두 번째 굴욕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딱, 따닥>하는 소리가 난 다음에 그것으로 일이 마무리되는 듯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조상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망각>이라는 보물도 효력을 나타냈다.
4장 연애의 비극
159쪽 우리의 아Q는 그렇게 무능하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만족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중국의 정신문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161쪽 아Q는 원래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위대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남녀유별>에 대해 지금까지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여 왔다.
162쪽 그가 서른 나이에 뜻밖에 젊은 비구니 때문에 마음이 들뜨는 재난을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5장 생계 문제
172쪽 샤오D는 아주 가난한 집 아이로 몸집도 작고 비쩍 말라 아Q의 눈에는 왕후만도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샤오D가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179쪽 어쩌면 그가 토곡사를 관리하는 늙은이에게만은 털어놓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웨이좡의 오랜 관례에 따르자면 자오 나리나 첸 나리, 또는 수재 나리가 성내에 가는 경우만 사건으로 쳤다.
181쪽 물론 거인 나리 집에서 일했다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었다.
182쪽 아Q의 말에 따르면 그가 돌아온 것은 성내 사람들에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들이 <장의자>를 <긴 의자>라고 부른다거나 생선을 튀길 때 파를 잘게 썰어 넣는 것, 그리고 최근에 관찰을 통해 발견한 결점으로 여자가 길을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 등이 불만족의 원인이었다.
183쪽 당시에 웨이좡 사람들 눈에 비친 아Q의 지위는 자오 나리보다 높다고 할 수 없어도 거의 동등하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189쪽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아Q를 <존경하면서도 멀리한> 것도 원한을 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서 감히 더는 도둑질에 나서려 하지 않는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7장 혁명
192쪽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자신은 이미 혁명당이고 웨이좡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포로가 된 것 같았다.
201쪽 <설마 그놈들이 아직 내가 이미 혁명당에 투항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8장 혁명을 허락하지 않다
203쪽 그는 대나무 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까지 말아 올리고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용감하게 거리로 걸어 나갔다.
210쪽 <이는 순전히 그 얄미운 가짜 양놈이 내게 반란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내 몫이 없단 말인가?>
9장 대단원
211쪽 자오 씨 댁이 약탈 당하자 대부분의 웨이좡 사람들은 이를 속 시원해하면서도 두려워했다. / 나흘 뒤 아Q는 밤중에 갑자기 체포되어 성내로 끌려갔다. 마침 캄캄한 밤이었다.
212~213쪽 한 사람은 그의 조부가 체납한 소작료를 지불하라고 거인 나리가 고소하는 바람에 들어온 것이고 또 한 사람은 무슨 일 때문에 들어왔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들이 아Q에게도 들어온 이유를 묻자 아Q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나는 반란을 시도했기 때문에 들어온 거라오.」
216쪽 자신의 손에 붓을 쥐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붓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내는 한 군데를 가리키며 그에게 서명을 하라고 했다.
217쪽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때로는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도 있고 또 때로는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었다. 단지 동그라미가 동그랗게 그려지지 않을 것만은 그의 평생 행적에 오점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런 아쉬움도 사라졌다. 손자 대에 이르면 동그라미를 아주 동그랗게 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20쪽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목이 잘리는 수도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223쪽 여론으로 말하면 웨이좡에서는 별로 이의가 없었다. 물론 모두들 아Q가 나쁘다고 말했다. 총살당했다는 것이 바로 그가 나쁘다는 증거였다. Question - 왜 묻지 않는가?
QuestQuestion - 왜 묻지 않는가?iQuestion - 왜 묻지 않는가?on - 왜 묻지 않는가?
Question - 왜 묻지 않는가?
루쉰의 『아Q정전』을 읽고 '아Q는 자신이 왜 죽는지 묻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Q는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대나무 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까지 말아 올리면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혁명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 혁명당이 된다고 믿었다. 총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이 왜 죽는지, 무엇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깨닫지 못했다. 정신 승리로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받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Q가 총살당했다는 것이 곧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그 죽음의 의미를 묻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변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언젠가 아Q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른 채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는 사람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 삶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어떤 힘에 지배당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Q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나는 사회에 잘 순응하는 타입이다. 나는 세상에 왜라고 잘 묻지 않았다.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기면 배척했다. 아Q가 혁명의 의미를 모르고 흉내 내듯이, 나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따랐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면 거부했다. 또 마을 사람처럼 침묵했다. 누군가 불의에 저항할 때, ‘저건 저런 사람만 할 수 있어. 나는 못해’라며 침묵했다. 질문을 멈춘다는 것은 사고를 멈춘다는 뜻이고, 사고를 멈추면 주체성을 잃게 된다.
나는 세상 속에서 편안함만을 찾으며,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계속 물어야 했다. 마주하는 변화가 낯설고 불편하더라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했다.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접할 때, 낯선 가치관을 마주할 때, 불편한 의견을 들을 때, 나는 먼저 거부하는 대신 묻기로 했다. '왜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세상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해하려 하는 것은 더 큰 성찰을 요구한다. 이해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침묵과 다르지 않다.
아Q정전』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넌 지금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
불의를 마주했을 때 ‘나는 못해!’라며 외면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라도 물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모르는 것 앞에서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이해하려 할 것이고,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침묵하기보다는 묻기로 했다.
질문(Question)이 나의 혁명! 나를 아Q가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가는 비 온다
기형도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잇는 것이 아니다
동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을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늘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