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 비가 내린 탓에 더 어둡고 차가웠다. 복잡한 마음에 멍하니 운전만 하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은 아들이 적막을 깼다.
아니. 똑같은 정도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없었던 약 20일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오랜만에 너무나 편안했다.
아들은 2년 전 가을쯤부터 학교에서 수시로 공황발작과 자해를 했다. 그때마다 난 울며 허겁지겁 그에게 달려갔다. 결국 난 아들에게 자퇴를 권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된 아들은 방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해를 해 구급대원들에게 이끌려 응급실에 갈 때만 빼놓고. 그런 날엔 피 묻은 방바닥을 닦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최근엔 아들을 절대 혼자 두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에 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외출해야만 했다.
지쳐 있던 내게 아들 입원은 일종의 휴가였다. 정신병동에 입원한 아들이 없는 집이 너무 편안하고 그 기간이 휴가 같다니!
엄마로서 심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병동 앞에서 멀끔한 아들 얼굴을 보자마자 꼭 품에 안아주었던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간사한 엄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들의 아픈 마음을 알지 못했다. 매일 무기력하게 있는 아들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만 갈 뿐이었다. 아들에게 드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어찌할지 모르겠다.
타인에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는 아들을 생각하며 최대한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아들은 더는 말이 없었지만, 내심 내 대답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말을 내뱉고 나니, 아들의 빈방을 청소하다가 갑자기 울컥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어 그를 보고 싶어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2023년 10월 가을, 무진시 안갯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19살 아들을 생각하며 쓴 글
<무진기행>은 1964년 10월, '사상계'라는 잡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윤희중은 속물적인 아내와 장인의 권유로 휴양 차 고향인 무진에 내려간다. 무진은 안개의 고장으로, 주인공에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공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무진에서 윤희중은 후배 박과 친구 조를 만나고, 성악을 전공한 하인숙을 알게 된다. 하인숙은 과거의 윤희중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인물이다. 윤희중은 하인숙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어느 날, 윤희중은 성묘길에서 자살한 여자의 시체를 목격한다. 이 사건은 그에게 삶의 허무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고, 무진에서의 경험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윤희중은 아내의 전보를 받고 무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안주하며 속물적인 세상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