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근사하게 헤어져 줄게!
언젠가부터 저녁상에 매일 함께 하는 맥주는 내 소울푸드가 되었다.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에 약을 타러 한 달 만에 간 날이었다.
"요즘 맥주 딱 한 캔 마시면 잠을 푹 잘 자요. 일어나면 기분도 좋아요."라고 의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술은 양과 상관없이 매일 마시면 알코올중독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다. 난 절대로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다. 오늘부터라도 당장 술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다.
집에 도착하자마 냉장고 문을 열었다. 500ml 맥주 딱 한 캔이 남아 있었다.
'오늘 마셔버리고 맥주와 그만 헤어지자. 아니지. 오늘 남편이 저녁 먹고 온다고 했지. 대충 먹어치우지 말고 내일 근사하게 헤어져 줘야지. 히히'
다음날 저녁, 얼큰하고 시원한 해물탕을 시켜 놓고 냉장고를 열었다.
고운 초록빛깔 맥주캔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이제 갓 20살이 된 큰아들이 어젯밤 홀로 나 대신 송별식을 치러 버린 뒤였다.
"아! 아~악!"
내 애달픈 탄성을 들은 남편이 사 오겠다며 급히 잠바를 걸쳐 입고 있었다.
"아니야. 나 이제 맥주 끊었어"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2024년 화성시도서관 소식지 <풍경>에 실린 글
- 여러분의 이야기 속 주제 '내일로 미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