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행복한 밥상의 잔재

by 백경자 Gemma

오늘도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행복해진다. 설거지를 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한 밥상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하루 세번 설거지가 주어진다면 불평 없이 감사하게 해 야할 즐거움이다. 이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지금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고 10 %이상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죽어간다는 보고는 미디어를 통해서, 신문에서 매일같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캐나다란 나라는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이 모든 부엌일들을 기계가 다 맡아서 대신해 주고 부억에서의 노동이 필요 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내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과 그릇들을 말끔히 씻어서 제 자리로 옮겨 놓는 일이 나의 삶에서 기쁨을 안겨주는 하나의 요소이다.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나자신에게 일러준다.


그렇기 때문에 설거지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즐거움이 아니다. 음식을 하고, 가족들이 즐긴 후에 부 억 카운트를 채우는 수많은 그릇들을 흘러내리는 물아래 말끔히 헹구어 낸 그릇들을 보면서 정화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듯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오면서 육 남매의 막내로서 음식을 만드는 일과 설거지를 하는 일은 나에게서 언제나 제외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내 인생에 삶이 힘들 때 마다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요소로써 이민의 삶을 무난히 이끌어 준 감초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처음 밥을 짓고, 우리의 고유 음식인 김치를 만들고 각종의 반찬을 만드는 작업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엄청난 수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실격된 존재임을 깨 달고 어떻게 좋은 엄마, 아내가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커다란 고민으로 다가 왔었다. 그래서 나는 밤이면 근처 직업 고등학교에서 제공하는 요리강습 수업을 듣기로 결정하고, 그때부터 장 장한 요리강습, 타자치기, 영어공부가 다시 시작 되었다. 한가지를 배우고 나면 또다른 많은 배울 거리가 줄을 이어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밤 반 학생으로 쉬는 날이 없이 강습소를 찾아 다녔다.


이제 조금씩 음식을 만드는데 자신이 생기고 재미를 보게 되었는데 음식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뒤처리가 말할 수 없이 쌓이게 되고 그때 설거지 하는 것 까지 끝마치는 일을 하면서 결국은 그 훈련이 내가 평생 좋아하게 된 동기를 안겨다 주었다. 직장에서 쉬는 날이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부 억에서 무엇을 만들던 하루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재료를 쓸고, 다듬고, 구상한 재료들을 요리하고, 만든 음식을 보고 기뻐하고, 또 가족들이 저녁식사때 즐겨먹는 모습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수십년의 내인생을 식탁을 차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무엇 보다도 음식을 만들고, 식사가 끝난 후에 씻어야 하는 그릇들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내손으로 비누로 닦아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헹구어 놓는 것 처럼, 내가 하루 종일 받은 스트레스를 그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내면의 앙금들을 제거해 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리하는 자체를 싫어하고 설거지는 더욱더 싫어한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힐링의 도구가 되어왔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나는 매일 음식으로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닌 다채로운 요리에 따라서 잃게 되는 작고 크고 한 다양하고 예쁜 그릇들을 닦고 씻고 하는 일이 나를 기쁘게 만든다.


얼마전 아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게 들려온다. 맘, 요즈음 젊은 여성들은 음식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 또 배우기를 거부하는 여성들과 어떻게 평생을 같이할 상대를 구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전문을 요리사로 바꾸었다면 대단히 성공을 하였을 것이라는 말로 엄마의 평생동안 해온 그 수고를 그렇게 위로를 해 주었다.


특히 세상이 변하여서 손끝 하나 쓰지 않고 나가면 고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헤아릴 수 없는 음식들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돈을 써가면서, 시간 들여서 기어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또 결혼상대가 그 일까지 대신해서 해 줄 테니까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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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식을 평생동안 먹고 살아간다고 하면 얼마나 건강에 문제가 오게 될지 생각만해도 불안해진다. 또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까지 문제는 영향을 미치고 대대로 유전인자를 변형시킬 수 있는 그런 위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신종 패스트 음식이 젊은 세대들의 입을 버려 놓고 집에서 하는 음식자체는 먼 이야기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또 페스트 음식에서 오는 비만증이 북미 국가의 의료비로 엄청난 재정을 소비하는 제1호라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크게 태어나서 5살이되기전에 5명중 1명이 아동비만이 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 시대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격의 교육이 부엌일을 멀리 하게끔 하고 설거지란 단어 조차도 생소하게 만들고 있으니 과연 삶의 주거지인 부역이란 곳이 필요할지 궁금해진다. 며칠전에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제 새로 짖는 콘도는 최저의 공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기위해서 부억에 필요한 냉장고와 음식을 만드는 가스레인지 자리를 제거하고 대신 잠자는 장소로 이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짖는다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은 음식은 밖에서 해결하고 잠자리만 해결하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민 초기 젊은 시절 나는 친구들을 좋아해서 늘 주말이 오면 사람 접대하는 일을 수없이 해 왔다. 그 결과 우리집에는 딸과 나의 요리에 관한 책자가 상당히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영양학에 대해서 조금은 배우고 왔지만 그 얄팍한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터득 해야만 했다. 나는 시간의 여유가 주어지면 내 즐거움은 부억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만들까? 이것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저것은 아들과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렇게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이 순간은 나만의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가끔씩 남편이 부억에 들어와서 내 몫의 즐거움을 나누어 갖기도 하는데 그의 방식은 내가 그릇들을 씻고 헹구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다룬다. 그것이 남편과 내가 아마 다른 사고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지도 모른다. 이런 물리적인 행위에도 우리는 사고가 다르고 하는 과정도 다르다. 만약에 남편에게 내 식을 요구 한다면 우리는 만사가 매일같이 싸움이 그치질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릇을 어떻게 씻고 헹구든 결과는 제 모습으로 돌려 다음날에 다시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행위에도 사고의 차이로 오는 힘든 순간들을 나는 그릇들을 씻어서 가지런히 쌓아 올리는 작업에서 이미 그 기쁨에 맛들이고 있다. 누가 어떤 스트레스를 주어도 이 작 은 행위가 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기에 또 다시 내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지언정 오늘은 이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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