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세를 사는것이 축복일까?

당신은 몇살을 살고 싶으세요?

by 백경자 Gemma

나는 의사를 보러 가는 약속이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다. 이 피할 수 없는 방문은 가야만 하는 의무 같은 것이다. 의사하고 약속을 하기위해서 전화를 하게 되면 비서들은 반드시 예약의 목적을 질문해 온다. 의사를 만나야 할 이유가 뭔 지를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 후에 이유가 합당하다고 생각을 하면 예약 날짜와 시간의 편리를 봐 준다. 아마도 그쪽의 편리와 의사의 시간을 절약 하기위해서 비서가 환자에게 필요한 준비를 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을 하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게 들려온다.


내가 의사를 보러 가는 날에는 의논할 사항들을 모두 쪽지에 상세하게 기록을 해서 갈 때 의사와 환자의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게 되고, 또 상의할 일들을 잊지 않고 다 이야기 하고 올 수 있다. 노년에 들어서면서 기억하는 것 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매일 늘어난다. 그 결과 의사의 시간도 절약해주고 환자의 목적도 다 얻고 올 때 만족함을 느끼고 오게 된다. 특히 이민자 환자들은 의사소통이 그렇게 쉽지 않은데다 자기의 신상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잘 설명하고 또 의사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을 할 때 서로가 최상의 시간절약과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의사도 많은 스트레스를 기다리는 환자들 때문에 받게 되고 결국은 환자도 방문목적을 다 이루지 못하고 나오게 된다.


그러나 남편의 장기 건강문제로 의사방문이 매 3개월에 한 번씩은 정해져 있다. 남편이 만성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그에 따른 많은 병원생활과 수술로 인해서 현재까지 살수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현대 의학은 그런 사람들을 수십년을 더 살게 만들어 주고 그것이 또 남편에게도 혜택을 주고 있으니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곁에서 돌봄 상대가 있을 경우는 장수가 축복이 되지만 아무도 보살펴 줄 수가 없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경우, 또 나라의 신세만 져야 할 때 이 지루한 삶은 참으로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연속일수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누가 마음데로 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 그렇게 육신의 고통과 싸움을 하면서 2016년에 척추수술을 두번씩이나 하여서 마비된 몸을 부활시키고, 걸음마를 다시 배우고, 숟가락 사용법, 물건을 잡는 훈련, 바로 서는 운동, 우주인처럼 옷을 입고 볼을 차면서 다리에 힘을 키우는 훈련, 가족들의 보살핌, 수많은 전문가들의 훈련을 통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거의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 많은 전문가들에게 늘 가슴 깊이 감사하면 또 남편의 생명연장을 도와준 의사에게도 많은 고마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상태에서 무수한 노인들이 장수를 원하고 살아간다면 이사회가 어떻게 될 른지… 사회의 도움속에 아무런 생산 없이 소모의 시간만 보내게 되는 시간만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돌볼 연고자 없이 가난속에 남은 긴 세월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을 할 때 100세를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모두에게 커다란 불행임을 누가 부정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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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옛 시대의 자식들과 달라 부모들의 둥지를 떠나고 병들고 아픈 부모을 돌볼 자식은 점점 사라지고 노년을 맞이한 부모들은 외로움과 고독속에 남은 여생을 보내 야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령이라 해도 죽을 레야 죽을 수도 없다. 아프면 재생을 할 때까지 최 첨단의 의료기술이 기개처럼 돌 봐주고 의료비는 나라가 부담하고, 모든 약값은 노인의 수입에 따라서 거의 무료로 제공해주고 ,신체 기관의 어떤 부분이 쇠퇴해지면 그것을 새것, 아니면 남의 것으로 대체 해주어 끊임없이 장수라는 명예스러운 나이를 먹게 해준다. 결국은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시대를 맞이했다. 나이로 인해 눈이 망가지만 렌즈를 새것으로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보겠 금 해 주니 우리의 인체는 늙어 갈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 100세를 사는 것이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다. 참으로 육신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면 두렵기만 하다. 요즈음의 신문에 부고를 보면 대부분의 사망자가 90세 전후에 연령을 살고 간 사람들이다. 아마도 좋은 음식, 맑은 공기, 이나라의 복지가 주는 행복지수가 수명을 그렇게 연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반면 이 시대 젊고 똑똑한 사람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전문직과 결혼을 하고 그것에 혼신을 다하고 혼자 살기를 원한다. 은퇴 후 살아야 할 30년 이상의 세월을 무엇을 하면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커다란 고민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테러사건들은 많은 젊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데 그들에게는 너무나 정당한 의무를 실천했다고 자부한다. CNN기자가 한 젊은 ISIS 에 가담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는데 그 사람의 대답이 너무나 무서웠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고 그 행위가 자기가 믿는 알라신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을 하니 이것이야 말로 정말로 끔찍한 발언이 아닌가?


점점 줄어드는 젊은 층, 늘어나는 노인층,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출산, 매일같이 공포속에서 여행을 해야 하고 직장으로 행하는 이세대에게 반면 내 마음은 커다란 빚을 지고 살아가는듯 하다. 옛날 중국의 진씨 황제가 자기가 성취해 놓은 부귀 영화를 두고 죽어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불 노 장수하는 약을 구해오라고 신하에게 명령하지 않았든가. 지금 우리가 사는 콘도에도 많은 숫자의 노인들을 돌보는 외국인 젊은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보고 있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행로를 매일같이 체험하게 된다. 오래 산다는 것이 정말 축복일까? 며칠 전 콘도에 사는 어떤 분으로 부 터 자기가 쓴 책이라 하면서 빌려준 책이 ” The Enigma of her longevity 장수의 수수께끼” 였다.


그런데 그 책의 주인공인 여 공학박사가 137세를 마치고 이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무엇이 수수께끼인지 저자는 그 대답을 밝히지 않고 끝을 맺었으니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에게 그 대답을 물었 드니 다음 2편에서 나온다는 답을 주었다. 답이 참으로 기다려 진다. 그러나 나에게는 장수라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이 단어가 무섭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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