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상원의원이 들려준 이야기

자랑스런 한인 2세와 귀한 만남

by 백경자 Gemma

몇차례의 이메일 초청에 김연아 마틴 강의를 들으러 한국일보 도산홀을 찾았다. 나는 이 사람을 신문에서만 만났고 몇년 전 오타와 국립극장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식에 갔을 때 한국에서 리틀엔젤스 무용단이 온다 하여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행사가 끝나면서 김연아 상원위원이 나와서 축하의 인사말을 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로 본적이 있다.


그녀는 체구도 그렇게 크지 않고 우람한 몸매도 아니었지만 평범한 모습에 우리 딸 보다는 조금 나이가 더 먹은 듯한 젊은 여인이었다. 20년간의 교편 생활을 접고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뭔가 남이 갖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서 친구들을 동반하고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워낙 시간에 여유가 없이 뛰는 사람이라 그날도 업무를 끝내자 마자 오타와에서 이곳으로 달려 왔다고 하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오는 길이 너무나 막혀서 시작 시간 보다 50분이나 늦게 도착을 하였다. 우리 일행은 그와는 반대로 교통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한시간을 더 빨리 도착하였으니 기다리는 시간이 두배로 길었다. 가서 보니 몇몇 아는 분들이 와 있었다. 그래서 오랬 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루한 시간을 메꾸었지만 생각 같아서는 재주꾼이 나와서 조커라도 해서 시간을 좀 유용하게 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앞줄에 높으신 분들( 총영사님, 한인회장 등등) 이 미리 오셔서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었겠기에 누 군들 선뜻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있었을까? 기다림이 오래가니 뒷 좌석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이제 식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지루함을 참기가 어려웠던 모두가 이구 동성으로 찬성을 했다.


그러자 기다리던 5인조 색소폰 밴드가 바로 연주를 시작하자 마자 그녀를 공항에서 태워온 여자 변호사와 함께 도착해서 적시에 행사가 진행 되었다. 순서에 따라서 축사가 끝나고 본강연으로 이루어졌는데 바로 뒷좌석에 앉은 나는 딸 모습의 그녀가 얼마나 상냥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다 또 유창한 한국말이 너무나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였다. 나이 7세 때 부모를 따라서 캐나다에 온 그녀가 어떻게 엄마 나라의 말을 저토록 거침없이 잘할까? 부모와 자신의 많은 노력의 결과이리라. 그녀는 통역관이 필요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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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온 파워포인트 내용을 이야기 하기전에 처음 하는 말이 “ 제가 어떻게 정치에 들어왔는지 아시나요?” 하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나라의 헌법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 경제가 얼마나 중요하며 어디에서 그 원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였다. 또 미국의 통합정책(Melting Pot) 에 대해서, 캐나다의 복합문화( Multiculturism)를 장려하는 복합문화정책에서 우리가 성공의 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에게 들려 주고 픈 이야기들…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말부터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그리고 실패도 꿈을 가지고 그 길을 향해서 걸어갈 때 체험하는 한 과정이라 그 과정도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그 결과만 보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정도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극히 강조 하였다. 실패한다 해도 그것이 성공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경험 이야기를 실례로 들려 주었다. 밴쿠버에서 성장한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여서 모든 한국부모가 희망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과학을 전공하려 하였는데 정말 공부가 너무나 힘들어서 따라 갈수가 없어 교육과로 바꾼 것이 전화 위복이 되어서 지금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얼마나 자신에게 진솔한 표현인가? 젊은 나이인 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알아 갔다는 것이 이렇게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누가 예측 했겠는 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잘한 결정이었는지 모른다고 자기 고백을 둘러주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쉽지 않은 과정의 어려움들이 있었다는 것, 처음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을 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저는 김연아 입니다, 한 표를 부탁합니다” 라 고 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그때를 잠깐 회상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유색인종에 대한 그곳 밴쿠버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 했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폴 유척(Paul Yuchuck) 이라는 우크라이나 사람인데 1963년에 이민을 와서 이분이 백인이었지만 이민자 였기에 인종차별을 받았는데 그때 이분이 이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복합문화란 모두가 평등하게 살수 있는 다문화 정책을 만든 창시자 였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만약 이분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민자로서 어떤 차별 대우를 받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분을 우리 이민자들의 창시자라 말해주고 있었다. 자기가 정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도 아마도 이분의 공로가 아닌가 하는 여운을 남겼다.


강의가 끝나면서 그녀는 또 밤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신호범 상원위원이 행사하는 곳에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하며 바람처럼 그곳을 떠났다. 그녀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떠났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이 그녀가 보통사람이 갖지 못한 열정이 아닐까? 그래서 아무나 오르지 못하는 그곳까지 도달한 것은 아닐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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